韓 “외교부가 더 관여할 부분 없어” 美 “국무부는 이번 조사와 무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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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호 03면

미국 정부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과 자국 정부는 무관하다고 재빨리 선을 그었다. 이번 사건의 외교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사건 수사에 나선 워싱턴DC 경찰 역시 말을 아끼고 있다.

양국 정부 서둘러 선긋기

미 국무부 당국자는 11일 “미 국무부는 이번 조사와 관련성이 없다. 한국 정부나 워싱턴DC 경찰 당국에 물어봐라”고 했다. 윤 전 대변인이 출국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협의 절차를 밟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을 일축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 8일 최영진 주미대사에게 “윤 대변인을 조사해야 한다”며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워싱턴 경찰이 이날 피해 여성의 신고를 받고 호텔로 출동해 그의 진술을 확보한 뒤 이뤄진 조치였다. 하지만 워싱턴 경찰은 “현재 성추행 신고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더 말할 게 없다”며 언급을 꺼리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와중에 청와대 고위 당국자가 연루된 사건인 만큼 외교적 문제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우리 외교 당국도 선 긋기에 나섰다.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은 11일 오전 TV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에 외교부가 더 관여할 부분은 없다. 다만 미국 수사 당국이 협조를 요청해 오면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워싱턴 경찰이 수사는 계속하되 경범죄 사안임을 이유로 한국에 윤 전 대변인 인도 요청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박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대북 문제 공조를 재확인했고 미국의 외교 현안인 시리아 시민군 지원 문제에서 한국의 협조를 약속받은 만큼, 그런 성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선 개인적 차원 사건으로 선을 그은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 역시 윤 전 대변인이 미국 영토에서 직무 중인 시점에서 사건이 터진 만큼 정부 차원에서 사건에 개입하면 정치·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신속하게 선 긋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동북아 최초 여성 대통령의 첫 방미에 고무됐던 200만 재미동포 사회가 받은 충격도 크다. 김영근 전 워싱턴한인회장은 “그동안 크게 개선된 한국의 이미지가 이번 사건으로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교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들도 이번 사건을 자세히 보도했다. CNN방송은 “호평으로 언론을 장식하기를 희망한 박근혜정부에 이번 사건보다 더 창피한 일은 없을 것”이라며 “(한국 언론은) 한·미동맹 60주년 대신 윤 전 대변인의 추문으로 도배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이른바 ‘윤창중 스캔들’이 미국 방문에서 매끄러운 성과를 거둔 박근혜 대통령에게 타격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2년 전 뉴욕에서 터진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성폭행 사건과 이번 사건을 대비해 보도하는 매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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