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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아베의 진짜 관심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지금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의 부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한류팬이란 뉴스를 접하면서 순진하게 한·일 관계가 좋아질 거란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베는 한류(韓流) 대신 일류(日流)란 단어를 쓰는 등 철저히 자국 이익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배후자인 이노우에 가오루의 고향이자 정한론(征韓論)의 발원지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덜 알려졌다.

 아베의 가계나 성장과정 역시 우리가 보기엔 수상하다. 그의 외조부는 1급 전범이면서 자민당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기시 노부스케이고, 외가는 명치천왕의 4세손인 관인친왕(寬仁親王)과 친척 관계다. 일왕과 인척이라는 점은 아베 가문에 큰 영광이었을 것이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전범으로 복역한 외조부의 명예도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베의 집안은 조부·작은할아버지·아버지·동생이 모두 성공한 정치인이고, 처가·외가·사돈들까지 모두 정·재계의 핵심이다. 39세에 정치에 입문한 이래 탈세 의혹, 반대 진영에 선 나가사키 시장을 야마구치 출신 야쿠자가 살해한 스캔들 등을 경험한 정치 9단이 아베다. 신사 참배, 위안부 망언, 일왕을 위한 만세삼창 등 일련의 행동에는 별것 아닌 구석 집은 내주고 대마를 얻겠다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사실 아베의 관심사는 일본에 그다지 매력적인 시장이 아닌 한국이나 중국이 아니다. 조지 프리드먼은 『100년 후(The Next 100 Years)』에서 일본의 재도약과 터키의 부상을 예견했다. 터키의 원전 수주를 자랑하는 회견장의 아베 얼굴에는 미래를 향한 의지와 자신감이 묻어났다. 엄청난 문화유산과 인적 잠재력을 갖고 있는 인도 역시 아베의 꽃놀이 판이다. 뭄바이를 기점으로 하는 고속철도 등 인도의 기간산업과 미래의 거대 시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의 선택은 탁월하다. 아프리카에서도 일본은 중국과 함께 엄청난 물량의 차관으로 자원과 인프라를 선점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일왕을 중심으로 국민을 일체 단결시키자는 전략은 프리드먼도 인정한 ‘안정적 내치’라는 일본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려는 고수의 포석이다. 일왕은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고지키(古事記)가 기록한 이래 일본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종교적 상징이라 지금까지 정치 지도자들이 섬기는 만큼 지지율도 높아졌다. 과거사를 건드려 일본인의 죄의식을 자극하면 윤리적으로는 옳으나 잃어버린 20년에 도호쿠 대지진까지 우울한 일본 정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같다. 국제사회에서 욕 좀 먹어도 더 좋은 시장을 공략하면 그만이라는 현실주의적 태도가 담겨 있다.

 지진과 쓰나미를 겪은 일본인의 절망을 한 번 상상해 보라. 바닥을 맛본 사람들의 절치부심은 무섭다. 일본은 엄청난 재난을 겪고도 단결해 다시 일어나는 나라다. 지도자가 확실하게 목표를 설정하면 사무라이의 맹목적 ‘추(忠)’ 정신으로 간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들의 황당한 역사인식이 아니라 우리가 맥 놓고 집안싸움이나 하고 있는 사이 밖으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고, 안으로는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해 내는 일본인들의 도전정신과 근면성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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