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어렵지만 선거 나가면 이겨야 하는 거구나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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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부인 최명길(51)씨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단박에 거절이었다.

 “‘의원님’한테 누가 될 것 같아서요….” 그는 남편을 ‘의원님’이란 객관적 호칭으로 불렀다. “나서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틀간 더 밀고 당겼다. “정 그러시면 9일 드라마 촬영장으로 와주세요.”

 인터뷰를 하되 경기도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하겠다는 이유는 뭘까. 정치인인 남편과 탤런트인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구분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최씨였지만 대화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탤런트에서 정치인 아내로 돌아갔다. 그는 지난 4일 남편이 새 대표가 되는 순간엔 “아, 선거에 나가면 이겨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최씨 생애 첫 번째 ‘정치 인터뷰’는 중앙일보와 JTBC가 함께 진행했다

 -정치면에 실리는 인터뷰를 한 일이 있나.

 “예전에 ‘용의 눈물’(드라마) 찍을 때 나는 이방원(태종)을 만든 원경왕후로, 남편은 DJ를 만든 조력자로 해서 ‘킹메이커 부부’란 컨셉트로 한번 크게 실린 적 말고는 없다.”

 -정치가 쉬운가, 연기가 쉬운가. 정치인의 아내는 정치인에 준하는 역할을 할 때가 많은데.

 “준하는 일을 할 때가 없다(웃음). 정치야 다른 의원 사모님들도 다 똑같이 하는 만큼만 한다. 어느 게 더 힘드냐고 했는데, 세상에 쉬운 게 어딨고, 안 어려운 게 어딨나.”

 -남편을 제1야당의 당 대표로 만들었잖나.

 “만들지 않았다니까.”

 -김 대표 혼자 힘으로 됐다고?

 “그렇죠. (취재팀이 못 믿겠단 표정을 짓자) 아니, 왜요? 틈틈이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를 하는 정도였지 다른 건 없었다.”

남편 잘 할거라 믿어 도와달라 호소

 -상대 후보 쪽에선 ‘최명길이 나타났다’고 하면 표 넘어가는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렸다는데.

 “(웃음) 무조건 도와달라고, 무조건 도와달라고만 했다. 이 사람이 당 대표가 되면 잘할 거란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이 전달된 거라고 생각한다.”

 - 당 대표에 당선됐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겠구나…. 그러나 기뻤다. 전당대회에 중3, 초등학교 5학년인 어진이와 무진이를 데리고 갔다. 무진이가 내 손을 굳게 잡더라. ‘됐어 엄마’ 이러면서. 나도 ‘아, 선거에 나가면 이겨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지지를 호소할 때 ‘이 사람은 넘어왔구나, 상대 후보를 찍겠구나’ 하는 감이 오나.

 “그런 느낌은 있다. 눈을 쳐다보면, 선거가 아니어도 눈을 쳐다보면 마음이 느껴지지 않나. 악수를 하더라도 꽉 잡아주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남편이 대표가 되니 대우가 달라졌나.

 “전혀 못 느끼겠던데. 촬영장에서도 내가 하도 푼수같이 굴어서 그런지.”

 김 대표는 1996년 국회에 입성한 뒤 2001년 10월 서울 구로을 보궐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최씨는 선거 당시 출산 부기가 덜 빠진 모습으로 남편인 김 대표의 유세를 도와 화제가 됐었다. 2004년 총선에서도 사극 드라마 촬영 복장으로 유세 현장에 오기도 했다.

둘째 낳고 바로 유세 … 요즘 손발 저려

 -2001년 선거 때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

 “그게 첫 선거였다. 무진이 낳고 산후조리도 못하고 보름 만에 선거를 뛰었다. 요즘 손발이 저리는 것도 다 그때 때문인 것 같은데.”

 -김 대표가 ‘유세 현장에 나가면 아내한테 사람들이 너무 몰려 현장에 데리고 나가기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얘길 했다고? 어머 질투하는구나. 말은 그렇게 해도 좋아할 거다(웃음).”

 -표가 되니까.

 “그렇죠.”

 -여태껏 많은 선거를 치렀는데, 가장 행복한 선거 혹은 가장 상처받은 선거는.

 “(2008년) 18대 총선이 기억난다. 남편이 불출마 선언을 하고선 다른 사람 선거를 돕겠다고 해서 한 달간 매일 새벽 100여 곳을 함께 다녔다. 불출마 선언이 기쁜 일은 아니지 않나. 100여 곳이나 다니면서 ‘아 내가 왜 다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의원 부인들과 자주 모이나.

 “민주당 내 의원 부인들 모임이 한 달에 한 번 있다. 촬영 때문에 못 갈 때도 있지만 다들 반갑게 맞아준다.”

 -조간 신문을 김 대표보다 더 정독한다는 말이 있다. 김 대표에게 브리핑해 줄 정도로 조예가 깊다던데.

 “조예 안 깊다(웃음).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애 아빠가 정치 쪽에 있으니 이런 얘기가 있다고 들려드리는 정도지. 나도 바쁘다.”

 -정치인의 아내가 조언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정치적 조언은 안 한다. 일상적 조언만 한다. ‘빨리 불 끄고 자자. 잠을 많이 자야 한다’ ‘식사 제때 하셔야 한다’와 같은.”

 -정치인은 늘 반대파들에게 거센 비난을 많이 받는다. 속상했던 경험도 많을 것 같다.

 “요즘 인터넷이 얼마나 발달했나. 두 아들도 인터넷으로 댓글들을 본다. 그럴 때면 아이들을 불러놓고 이야기한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정치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아이들도 금방 이해하더라.”

조용하지만 용기 있는게 남편 매력

 -김 대표가 어버이날을 맞이해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줬다. 백발의 대표가 어버이라면서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모습이 새로웠다.

 “왜 그러세요, 나이 얼마 안 돼요(웃음).”

 -남자로서의 김한길 대표는 매력이 있나.

 “매력 있다. 매력이 없었으면 내가 왜 결혼했겠나. 죄송하다(웃음). 뭔가를 막 만들려고 일부러 꾸미거나 하는 게 전혀 없다. 세상이 아는 김한길, 최명길이 아는 김한길의 간극이 난 크다고 생각한다. 책임질 줄 알고, 조용하지만 용기 있다는 게 매력이더라. 용기 있게 하세요!”

 -이번 전대 때 황신혜씨가 와서 김 대표를 도와줬다.

 “도와줬다? 황신혜, 김성령, 김보미, 민해경씨 등이 와줬다. 많은 사람 만나서 인사한 것이다. 그분들은 처음이 아니라 구로지역 때부터 와준 친구들이다. 내가 명성황후(드라마) 했을 때 여자 출연자 모임이 15년째 있다. 그분들은 항상 선거 때마다 ‘이번에 있지 않아? 우리가 가서 응원해 줘야 하지 않아?’라고 한다. 황신혜는 외모는 안 그래도 굉장히 터프하다. 참 고마운 친구다.”

황신혜·김성령 구로 때부터 선거 도와

 -김 대표가 앞으로 야당 대표로 힘든 길을 갈 수도 있는데.

 “내가 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를 하는 김한길의 부인 최명길일 뿐이고, 지금은 현장에서 촬영하는 최명길이고, 집에선 애 엄마 최명길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 이상은 내가 능력이 없어서 못한다.”

하선영 기자, JTBC=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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