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연말까지 버텨라 … 글로벌 해운사 '머니 게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버티는 자가 살아남는다’.

 세계 경기 침체로 직격탄을 맞은 세계 해운업계의 화두다. 버티기 성공의 관건은 실탄(자금)이다. 그래서 각국 정부가 해운사를 향한 ‘머니 게임’에 나섰다. 그러나 국내에선 정부가 미적대는 사이 업체들이 힘겨운 홀로서기를 하느라 숨이 턱까지 찼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9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해운업계에서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비우량 회사채는 1조8500억원어치에 달한다. 겨우 갚아나가고는 있지만, 갈수록 돈을 융통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해운사에 적자가 쌓이면서 신용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국내 3대 해운사인 한진해운·현대상선·STX팬오션은 지난해 업체별로 1000억원에서 5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2008년 156%였던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754%로 껑충 뛰었다. 현대상선은 720%다. 국내 4위 해운사였던 대한해운은 이미 지난해 4월 두 손을 들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STX팬오션은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다. 중국 최대 해운사인 코스코가 자금난에 빠지는 등 외국 해운사도 마찬가지 상태다.

 앞으로도 간단치 않다. 미국 건설업이 살아나는 조짐이 있지만 ‘미국산을 쓰자’는 분위기 탓에 아시아산 자재 수입은 예년만 못하다. 그러다 보니 계절적으로 해운 성수기인 봄철인데도 운송 가격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4월 말 아시아~미국 노선의 20피트 컨테이너(TEU)당 운임은 1086달러로, 1년 전(1200달러)보다 오히려 낮다.

 아시아~유럽 노선은 같은 기간 운임이 TEU당 1888달러에서 818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간에 해운업 사정이 나아지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앞다퉈 해운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상반기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에 각각 95억 달러(10조5000억원)를 지원한 바 있다. 세계 5대 해운사 중 하나인 하파그로이드가 있는 독일도 정부가 업계에 18억 달러(약 2조원)의 유동성을 풀었다. 함부르크시는 현금으로 7억5000만 유로(1조원)를 이 회사에 지급했다.

 일본은 연 1%의 금리로 1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길을 텄다. 양홍근 한국선주협회 상무는 “조선사에 배를 발주하는 것이 해운사이기 때문에 해운업이 무너지면 조선업도 무너진다는 위기감에 각국이 머니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 정부도 해운사 지원을 해왔다. 2009년 자산관리공사의 4700억원 규모 선박 매입, 무역보험공사의 6900억원 규모 보증서 발급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규모 면에선 외국에 한참 못 미친다. 해운사들이 히든 카드로 생각했던 영구채 발행도 무산됐다.

 영구채는 형식은 채권(부채)이지만 만기 연장이 얼마든지 가능해 실질적인 자본으로 보는 게 국제 기준이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채권이라고도 부른다. 영구채를 발행해서 돈을 끌어오면 부채 비율이 낮아지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7개월째 영구채를 자본으로 볼지, 부채로 볼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영구채가 자칫 빚을 숨기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영구채 발행을 못한 것도 문제지만, 정부 결정을 기다리다 시간을 허비한 게 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의 2조원 규모 해운보증기금 설립도 지지부진하다. 해수부 관계자는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하려 했으나 불발됐다”며 “기획재정부는 기금 신설에 여전히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해수부 뜻대로 돼도 이 기금은 내년 초에나 집행이 가능하다. 선주협회 양 상무는 “자금 문제는 시기가 중요하다”며 “때를 놓치면 손을 쓰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희도 연구원은 “정부가 지원에 나설 요량이라면 최대한 서둘러야 같은 돈으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