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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폭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곳곳에서 석유폭력이 난무한다. 이번엔 광주에서 석유난로의 폭발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6명도 화상이 대단하다. 「유화」는 우리생활의 새로운 폭군으로 등장했다. 「탄마」에서 언제나 해방되나 싶더니 이젠 「석유」까지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유마」가 더 무서운 것은 불길을 몰고 다니기 때문이다. 유류난로가 폭발하면 꼭 불이 일어난다. 사람은 불길 속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도 재산을 재(회)로 만든다. 유마는 철저한 파괴주의자이다. 깊은 잠 속에서 사람의 목숨을 가만히 유괴하는 연탄개스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이다.
개스중독은 네 벽 안에서 일어나는 사고다. 석유폭발은 자칫하면 한 동리를 불바다로 만들 위험도 없지 않다. 더구나 그 보급율이 높은 도시의 경우 소방차가 씽씽 달려들 만한 길마저 시원치 않다. 조밀한 3등 주택가에서 그런 사고가 터지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된다. 앞으로 이런 사고가 뜸해지라는 법은 없다. 화기를 만지는 주인공들은 거의 대부분이 주부들이다. 아마 상당한 경우는 식모일 것이다. 주부들은 그나마 찬찬한 편이라고 생각해도, 후자의 「찬찬함」은 그렇게 믿을 수가 없다. 우선 자연연령이 어리다. 10대의 소녀들에게 「석유난로」의 안전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불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석유시대(?)를 맞은 지는 이제 겨우 한 돌이다. 돌잡이의 걸음마로는 언제 그 녀석의 행패를 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고의 뿌리는 메이커(제작자)에게 달려있다. 제품자체의 안전도가 의심스러운 형편에, 「부주의」만 탓할 수는 없다.
사실 디자인이 잘된 제품을 보면 웬만해서는 사고가 없게 되어있다. 석유탱크도 이중으로 되어 위협의 도수를 줄여놓았다. 네발을 붙인 바탕도 원형이어서 쓰러질 가능성을 상당히 제거했다.
폭발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 허술한 구석이 눈에 띄지 않은 것은 당국의 눈이 난시라는 말도 된다. 그 멍청한 난시의 눈길 속에서 우리의 부녀자들은 터무니없이 죽음을 당하고 있다. 안전도 검사관들은 좀 눈을 번쩍 떠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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