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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삶으로 이어온 종가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천년의 생활문화를 안고 있는 명문 종가

지난 2년여 동안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 종가 17곳을 심층 취재•탐방하여, 각 종가의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담은 『천년의 삶으로 이어온 종가 이야기』가 고유 명절인 설을 앞두고 출간되었다. 이 책은 “우리는 천년 세월을 살고 있는 셈이다”는 어느 종손의 말처럼, 천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조상들이 어떤 문화를 가꾸어왔는지를 대표적인 종갓집의 세밀한 사례를 통해 살피고 있다.

각 종가들이 보존하고 있는 다양한 제례의식은 물론 내림음식, 전통복식, 종가의 역사와 내력, 종가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삶, 현대문명과 맞닿아 있는 현재의 모습 등을 세심하게 관찰하였고, 또 이를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취재 형식으로 정리하였다.

또한 지역과 내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각 종가들의 독특한 문화상을 드러내고 있을 뿐 아니라, 각 종가의 전통문화가 현대 속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고, 어떻게 변화했는지 각 종가의 살림을 맡고 있는 종부와 종손들의 입을 통해, 또 시연(試演)을 통해 살펴보았다.

2년여에 걸쳐 전국을 누빈 취재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는다면 단연 현장감과 전문가적인 안목이다. 이 책은 문화 유적을 기행하는 형식이나 인상기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전문가의 눈으로 본 종가들의 생활문화를 마치 사실적인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의 차와 예법과 음식, 복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가르쳐온 전문가다운 저자의 높은 안목으로 각 종가의 제례 순서, 제례 음식의 종류, 내림음식 만드는 방법, 절하는 법, 복식 등을 한컷 한컷 담아 오늘에 재현했다. 그럼으로써 마치 현장에서 그윽한 향취를 맡으며 종갓집의 여러 면모를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며, 이 책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유품들을 비롯해 일반인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길제, 종손과 종부들의 절하는 법, 종부들의 삶 등 귀중한 문화자산들을 망라하고 있어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열일곱 종가들의 선정 기준은 첫째는 종가의 상징인, 즉 조상을 모신 사당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종손이 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야만 살아 있는 종가의 생활 풍속을 취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예가 엄격해 좀처럼 열지 않은 종가의 사당문을 열게 하고, 종손과 종부의 절하는 법을 일일이 사진에 담고, 때도 아닌 제례음식을 종부가 직접 만들도록 하는 데는 저자의 다리품과 예를 다한 깍듯한 큰절이 큰 몫을 했다.

현대 속에 뿌리내린 전통의 향기

이 책에 나오는 종가댁의 사람들은 여전히 멋과 향취가 물씬 풍겨난다. 저자가 20세기의 끝자락에서 만난 종부들은 대를 이어 실질적으로 종가를 이끌어온 산파이자 산증인이었다. 대개 환갑을 넘긴 종부들의 파란만장한 삶은 현대문명과 맞닿아 있는 오늘의 우리 문화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종부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조상의 멋과 지혜가 녹아 있는 올바른 전통이 명문종가들의 고색찬연한 고택 안에서 아름답게 숨쉬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200여 컷이 넘는 사진들을 따라가다보면 고루해보이는 예(禮)라는 것이 어떤 틀에 박힌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환경에 맞게 거듭나고 변화하는 가가례(家家禮 : 집안에 따라 저마다 다른 예법)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종가의 가풍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제례가 불편하기만 한 전통이 아니라, 단연코 우리의 복식문화와 음식문화•차문화• 용기문화• 정신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는 저자의 의견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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