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기술력 차이 … '국수국조' 뛰어넘은 한국 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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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현대중공업은 세계 최대 규모인 1만8400TEU급 컨테이너선 5척을 7억 달러(7700억원)에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TEU는 20피트컨테이너를 의미한다. 배 한 척에 컨테이너 1만8400개를 한꺼번에 실을 수 있는 규모다. 종전 최대 규모이던 대우조선해양의 1만8000TEU급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다. 배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선주가 바로 중국 2위의 해운업체 CSCL(中海集運)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우리 조선업계의 최고 경쟁자인데도 중국 굴지의 해운업체가 자국 업체를 제치고 한국 업체에 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우리 조선업계의 기술력을 더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드릴십 등 고부가 선박 독차지

현대중공업이 2010년 7월 인도한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머스크 에든버러호의 모습. 이번에 중국에서 수주한 배는 1만8000TEU급으로 이보다 크다. [사진 현대중공업]▷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조선업계는 ‘국수국조(國輸國造·중국산 제품은 중국산 배로 수송한다는 뜻)’ 정책을 비롯한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한동안 무섭게 성장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수주량과 수주액에서 차례로 국내 조선업계를 앞지르더니, 지난해에는 수출액에서도 12년 동안 세계 1위이던 한국을 밀어냈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중국을 위기 요인으로 첫손에 꼽는 관계자들은 많지 않다. 지난해 수주 관련 통계수치를 보면 그 이유가 나온다. 지난해 한국 조선업계는 750만CGT(수정환산t수)를 수주해 710만CGT의 중국에 간발의 차이로 앞섰다. 하지만 수주액은 한국이 299억 달러로 중국(154억 달러)을 두 배 가까이 앞섰다. 국내 업체들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훨씬 비싼 배들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한동안 중국에 고전했던 한국 업체들은 2011년부터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주력하면서 질적인 격차를 크게 벌려 나가기 시작했다.

고효율 엔진 … 중국보다 17% 기름 덜 써

 지난해의 경우 국내 업계는 전 세계에서 단 두 척씩만 발주된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와 LNG-FPSO(부유식 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를 각각 한 척씩 수주했다. FPSO는 20억 달러, LNG-FPSO는 7억7000만 달러짜리였다. 총 12억 달러 상당의 LNG-FSRU(부유식 LNG저장·재기화설비) 네 척도 전량 수주했다. LNG선은 지난해 전 세계 발주 물량의 73%(24척·49억 달러), 드릴십은 67%(26척·93억 달러)를 우리가 차지했다. 중국도 최근 들어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기본적인 기술력 격차는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친환경 고효율 기술도 앞서 있다. 현대중공업의 G-타입(Green Type) 친환경 선박 엔진의 경우 기존 엔진보다 연비를 7% 높였다. 이 엔진을 7500TEU급 컨테이너선에 탑재할 경우 25년간 800억원의 연료비를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제 선박은 연비가 높지 않다. JP모건은 지난해 연말 ‘한국의 조선업계 현황’ 보고서에서 “40만t급 초대형 광탄운반선(VLOC)의 경우 중국산 배가 대우조선해양 제조 선박보다 17%나 더 많은 연료를 소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선사가 한국 조선업체를 선택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중국 언론은 CSCL의 이번 발주에 대해 ‘도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만선일 때 운항 비용을 아낄 수 있지만 빈 배로 운항할 경우에는 타격이 더 크다. 선박 가격도 중소형 선박보다 더 비싼 것은 물론이다. 과감하게 모험에 나선 CSCL 입장에서는 배라도 확실한 곳에서 사기로 결정한 셈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해운업체는 대형 선박일수록 제조 경험이 풍부하고 높은 기술력을 갖춘 업체에 발주를 하게 된다”며 “그런 요건들을 갖춘 것이 한국 업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조선 최악 위기 … 당분간 큰 위협 안돼

 값싼 배로 물량 경쟁을 벌여 온 중국 조선업계는 현재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중국은 조선업체가 16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난립하면서 ‘경기침체→저가 수주→수익성 악화’의 충격파를 우리보다 더 심하게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2~3년 내에 조선업체를 500여 개로 대폭 축소할 방침이라 대규모 파산 및 피인수 사태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KOTRA 상하이무역관의 김명신 차장은 “설비 수준과 기술력 측면에서 한·중 간 격차가 크기 때문에 구조조정 이후에도 중국 업체들이 당분간은 큰 위협 요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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