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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유부남과 유부녀, 그리고 나혜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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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유난히 부담 없는 남자와 여자’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자는 게 아니다.

 결혼을 통해 배우자가 생기게 되면 남녀 모두 처지가 달라지는 건 매한가지. 하지만 사회에서 유부남과 유부녀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말 너무 다르다.

 미국에서 살 때다. 그들은 나를 ‘미세스 서’라 불렀고 남편에겐 ‘미스터 서’라 했다.

 결혼하면서부터 남편 성을 따르게 되어있는 것도 원통한 일이지만 결혼을 했다고 해서 남편은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똑같이 ‘미스터’인데 반하여, 여자는 ‘미스에서 미세스’로 호칭이 바뀌어야 하는 건 더 원통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더라. 원한다면 결혼해도 처녀 때 성을 유지할 수 있고, ‘미세스’란 호칭이 성차별이라 해서 ‘미스’와 ‘미세스’를 구분하지 않고 ‘미즈’라고 부르기도 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결혼하면 바뀌는 게 어디 호칭뿐이겠는가.

 한복을 입을 때도 처녀와 부인은 치마를 돌려 입는 법부터 다르다고 하고, 하와이에서는 귀 옆에 꽃을 꽂을 때도 처녀는 오른쪽이고 부인은 왼쪽이라던가 하던데. 총각과 유부남은 구별하지 않고, 유독 처녀와 유부녀만을 구별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혹여, 여성의 순결을 중시했던 시대에 순결한 여자와 아닌 여자를 구별하고픈 마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다른 이성과 정을 통한, 불륜 유부남과 유부녀에 대한 사회의 반응도 다르다. 얼마 전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불륜 연예인들이 있다. 불륜 당사자가 남자인 경우는 아직도 브라운관에서 잘나가고 있는 반면, 당사자가 여자인 경우는 더 호된 곤욕도 치르고 ‘찍소리’ 못하며 지내고 사는 것이 현실.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했다면 남녀 똑같이 자숙해야 맞고, ‘사랑이 뭔 죄냐’ 한다면 유부남이건 유부녀이건 둘 다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옳다.

 구한말, 나라가 기울던 망국의 시기에 태어나서 화려한 삶을 살다가, 금지된 사랑을 한 죄로 원치 않던 이혼을 당한 후, 한순간에 온 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국은 행려병자로 외롭고 처절하게 생을 마감한, 한 여인이 있다. 그녀 이름은 나혜석. 1896년 4월 28일생이니 117년 전 태어난 분이다.

 진명여학교 수석 졸업으로 신문에 처음 이름이 오르게 되면서, 최초의 미술 전공 동경유학생,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최초의 서양화 개인전 개최, 최초의 정조 유린에 관한 위자료 청구 소송 등 숱한 얘깃거리의 주인공. 보통사람들은 그녀를 그저 ‘자유연애와 불륜과 이혼 등을 거치면서 화가에서 행려병자로 전락해 버린 비련의 여인’ 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 여성운동가들의 주장을 이미 100년 전 외쳐댔던 그녀는, ‘앞서가도 너무 앞서간 선각자’다.

 ‘이혼고백장’을 통해 ‘조선남자들은 참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도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라며 남녀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이중적 성윤리를 고발하기도 했고, 소설 ‘경희’에서는 ‘여자도 인간이외다’ 하며 우리나라 최초로 남녀평등을 외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이런 남녀평등이나 여권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삼일운동에도 가담하여 5개월이나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리에서의 최린과의 염문설로 부도덕한 여자라는 것만을 앞세워, 그녀의 여러 가지 다른 훌륭한 업적들이 가려진 것은 너무도 안타깝다.

 아무리 똑똑한 여자라도 부도덕한 행위를 한 여인의 종말은 이렇다는 본보기인가. 희생양인가. 그 행위 자체야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지만 만약 나혜석이 남자였다면 ‘자유분방한 삶을 즐겼던 시대를 앞서간 당대 최고의 화가와 학자’라 칭송받지 않았을까. 만약 그녀가 조금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세계적인 페미니스트가 되었을 터인데 아쉽다.

 그나저나. 예전에 비해서 여자들이 살기에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아들 못 낳았다고 쫓겨나는 여자 없고, 전문직에서 당당하게 자기 몫을 해내는 여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나라의 수장도 여자가 되는 세상. 이렇게 달라진 세상 뒤에는 그렇게 숱한 욕을 먹으면서도 남녀평등을 외쳐대던 나혜석 같은 선각자가 있었기에 가능해진 것은 아닐까.

엄 을 순 문화미래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