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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스의 새 처방 “허리선을 내려라”

중앙일보

입력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있는 리바이 스트라우스사의 최고경영자 필 매리노(55)는 주위의 실리콘밸리 종사자들과 공통점이 별로 없다.

이 청바지의 제왕은 다른 직원들과 대등하게 칸막이 안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전망 좋은 벽돌건물의 꼭대기층 카펫 깔린 방에서 일한다. 실리콘밸리의 경영자들과 달리 그는 회사의 어려웠던 과거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과거의 명성에 의존해온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또 업계의 최고 전문가로 자처하지도 않는다(“내가 아무리 기를 써도 섬유와 옷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그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처럼 캐주얼 차림으로 출근한다. 다만 늘 자기네 제품이다. 최근 기자가 방문한 날에는 도커스 라인의 짙은색 면바지와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남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고 싶어했다. 무슨 바지를 입었느냐는 느닷없는 질문에 기자는 ‘바나나 리퍼블릭’이라고 대답하며 미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리바이스를 외면한 한 세대를 다시 리바이스 매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매리노의 임무다. 지난 3월 그는 1백5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 청바지 명가의 5년 연속 매출 하락세에 종지부를 찍고 다시 성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럴 때도 됐다. 1996년 이래 리바이스의 수익은 탈수기 속의 면셔츠보다 더 빠르게 줄어들었다. 매출액이 71억달러에서 지난해 42억달러로 감소했다.

이 회사는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외부적으로는 마우이 진스와 디젤 등 신진 브랜드들이 약진했다. 내부적으로는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헐렁한 ‘배기 룩’ 같은 패션 경향을 놓쳤다.

리바이스는 1999년 펩시·퀘이커 등에서 경력을 쌓은 매리노를 영입해 쇄신을 꾀했다. 매리노는 우선 재무구조 개선과 비용절감으로 회계사들을 놀라게 했다. 이제는 제품쪽으로 눈길을 돌렸고 뉴스위크에 자신의 복안을 귀띔했다.

리바이스는 1873년부터 바지를 팔아왔다. 독일 출신의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라트비아 출신의 야콥 다비스가 손잡고 작업복 바지 귀퉁이에 작은 금속 리벳을 박아 팔기 시작했다. 20세기 내내 거의 모든 미국인이 리바이스를 입었다.

그러나 1990년대 데님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지만 리바이스 청바지와 새 라인 도커스 카키는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값이 떨어지고 이윤이 폭락했다. 설상가상으로 리바이스의 주고객층은 아끼는 청바지가 헤질 대로 헤진 다음에야 새 바지를 사는 남성들이었다. 또 부채와 미국 공장들의 높은 인건비가 회사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펩시 북미법인의 대표를 지낸 매리노가 등장했다. 그가 취한 첫번째 조치는 사내 자판기에 펩시콜라를 추가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직원들에게 콜라 전쟁의 의식구조를 주입시켰다.

지난해 10월에는 구내식당에서 디젤 청바지를 입은 직원을 발견하고 전직원에게 다음과 같은 e메일을 보냈다. “여러분은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다. 여기서 일하려면 우리 회사 옷을 입어야지 경쟁사 옷은 안된다.”

그는 또 월스트리트를 찾아가 27억달러의 채무 상환조건을 재협상하고 11개의 미국 공장을 정리했으며 남미 공장들로 눈길을 돌렸다.

매리노의 다음 쇄신책은 매장 우위의 재확보였다. 그러기 위해 내리막길의 유럽 법인을 소생시킨 로버트 핸슨(38)을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핸슨의 임무는 라바이스를 패션 리더로 부활시키는 것이다. 올 가을 리바이스는 얼룩방지 기능이 추가된 새 ‘스테인 디펜더’ 도커스 바지를 출시할 계획이다. 새로 출시되는 남자 청바지들은 골반바지처럼 허리 선이 짧다. 여성용으로는 새 섬유와 마감기법을 사용한 골반바지가 나온다.

매리노는 최고급 제품 라인의 판매증진에도 도움이 될 정책들을 도입했다. 바니스 같은 고급 매장의 판매 경향을 발빠르게 파악해 인기있는 제품군을 대형 백화점들에 대량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또 자신이 ‘리바이스 상형문자’라 부르는 혼란스런 스타일·치수 표기법(501s, 505s, 527s 등)도 바꿀 생각이다. “손님은 바지 한벌 산 뒤 가게를 나가고 싶어한다. 기념품을 수집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매리노는 아직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있다. 리바이스는 지나치게 남성시장 편중적이다. 월마트 같은 할인점을 찾는 국민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어스·메이시 등의 백화점을 중심으로 판매한다.

리바이스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신선한 감각의 수혈이 절실하다. 패션 컨설턴트 해리 버너드는 “지난 5년 동안 리바이스의 브랜드 가치가 밑바닥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만일 매리노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리바이스에서 낮아지는 것은 골반바지의 허리선뿐일 것이다.

출처:뉴스위크 Brad Stone 샌프란시스코 지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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