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의와 국회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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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랜 변칙적경색을 뚫고 그 기능을 정상화시키는 듯 싶었던 국회가 다시금 빗나가기 시작한 인상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야당의 등원으로 이룩된 국회 기능의 정상화가 그대로 정국 정상화 전부를 의미한다고는 보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로부터 불과 닷새만에 국회가 다시 멍들 징조를 보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적어도 국민일반은 여·야 전권회담을 통해 헌정의 정상운영을 국민 앞에 약속하고 국회기능을 정상화시킨 여·야 정치인들이 이번만큼은 신의와 민주주의의 「룰」에 입각한 정치적 책임을 다하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 현실은 책임을 질줄 모르는 그 고질적 부 도덕상을 다시 거침없이 노정시키고 있을 따름인 것 같다.
여·야 전권회담의 성공, 의정서의 확인을 바탕으로 하여 국회기능을 정상화시킨 협상의 정신은 결코 그런데 있었다고 이해되질 않는다. 협상 정신은 민주주의의 기조 회복을 위해서도 소중하였으려니와 책임 있는 정치의 구현을 위해 보다더 소중하였으리라. 그렇다면 정치적 신의를 저버리려는, 다시 말하면 그 협상 정신을 근저에서 부인하려는 소행은 어디서 뛰쳐나온 것인가.
우리는 이미 본난을 통하여 여·야 협상이 성공한 마당에도 의연히 강행된 단독 국회운영의 부당함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악몽과도 같았던 의회부재의 현실을 재연시키지 않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전통 축적을 위해 국회의장이 야당도 참여한 국회에서 재 신임을 받으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그러한 우리의 소신은 오늘에도 변함이 없다. 그것은 첫째로 변칙적 단독국회운영을 정신적으로 재청산하는 의미에서도 중요하려니와, 둘째로 「페어·플레이」로 이어질 새로운 여·야 관계 발전을 위해 그것이 선도적 역학을 하리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셋째로 최소한도의 정치절 도의의 요구임에서 중요하다.
이 의장은 야당의 등원하면 재신임을 묻겠다고 말한 바를 자인하였다. 그런데 외 이제 와서 궁색한 이유를 붙여 식언하려는가. 우리는 이 의장의 진의가 반드시 그러하지 않기를 믿어 둔다.
지금 한국 정치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화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의 강조요, 민주 전통의 착실한 축적이다. 신과 행이 달라서는 안 된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대립당의 존립을 외면하려는 사고는 위험하다. 신의와 협조로 이루어지는 정치적 관습을 차곡차곡 쌓아 가야 한다.
더욱이 국회 기능의 새로운 마비란 있을 수가 없다. 국민은 이제 불장난 같은 정치곡예를 관람할 흥미가 없다. 책임을 다할 줄 모르는 풍조가 잔존하는 한 국회 기능 정상화는 어쩌면 오래도록 정국 정상화와 직결되어 생각 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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