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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 잠재운 ‘힐링 뮤직’ … 우리 학교 애들이 달라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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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중학교 청소년오케스트라단의 연습 모습. 일산백병원 박은진 교수는 "청소년기의 음악 활동은 정서 중추를 자극해 폭력성·충동 조절, 정서 순화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통증을 가진 환자에게 좋은 음악은 건강한 심신을 위한 산소와도 같다.” 음악이 의료영역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정서순화를 비롯해 통증 감소,

스트레스 해소, 뇌 활성화 등 다양한 치유 효과를 지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다. 음악을 산소에 비유한 부산대병원 통합의학센터 박정미 교수는 “주로 장애아동이나 노인을 대상으로 했던 음악치료가 최근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 통증이 심한 암 환자, 폭력 성향이 있는 청소년에게 다양한 심신치료를 위한 보조도구로 권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 스트레스호르몬 낮추고 진통제 역할

경희대치과병원에서는 만성 구강안면통증 환자 치료에 음악을 접목한 지 오래다. 구강안면통증은 습관적인 이갈이·이 악물기로 인해 근육이 긴장하면서 나타난다. 연관통으로 두통·안구통·치통·이명·설(혀)통 등이 발생한다. 구강내과 홍정표 교수는 “이갈이, 이 악물기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라며 “음악치료를 통해 스트레스가 완화되면서 근육이 이완되고 통증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음악치료학회에서는 선호하는 음악을 감상할 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분비가 감소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물질이 생성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2011년 일본 오사카의대는 “음악은 코티졸 수치를 감소시켜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발표했다.

음악은 진통제 역할도 한다.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는 “화상 환자의 약 80%가 강한 진통제를 투여해도 통증과 가려움증 때문에 괴로워한다”며 “화상환자에게 좋아하는 음악을 30분씩 10회 들려준 결과, 평균 25%의 통증 완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음악이 주의집중을 분산시켜 통증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면 통증유발물질이 분비돼 뇌에 전달된다. 박정미 교수는 “통증과 음악을 수용하는 기관은 뇌의 시상하부로 동일하다. 통증이 전달되는 과정에 음악을 들으면 뇌는 그 통증을 덜 감지한다. 수술이나 치과시술 시 음악을 틀어놓는 것이 이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한방에서도 기(氣) 균형 맞춰 음악치료

최근에는 한의학에 음악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한방음악치료’도 등장했다. 강동경희대 한방음악치료센터 이승현 교수는 “서양의 음악치료가 심리학을 바탕으로 주로 정신 문제를 회복시키고자 한다면, 한방음악치료는 음양오행이라는 한의학을 토대로 육체적 질병 치료에도 활용한다. 주로 뇌경색·중풍·암·만성피로·아토피 환자에게 처방한다”고 설명했다.

원리는 이렇다. 음악의 리듬·화성·선율을 각각 발하는 기운에 따라 음과 양, 오행(목화토금수)의 성질로 구분한다. 그리고 환자가 어떤 병증인지를 진단한 후, 환자의 기 흐름에 맞는 악기와 음악을 처방한다. 이 교수는 “같은 뇌경색이어도 화가 치밀어 병이 난 사람은 기운을 눌러줘야 하고, 기운이 없어 허한 탓에 병이 난 사람은 기운을 북돋워야 한다. 이 같은 원리로 한방음악치료를 받은 뇌경색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80% 이상 병세 호전율이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청소년 정서 순화에는 음악활동이 으뜸

음악 역시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돕기 위한 훌륭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교수는 “청소년 시기에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의 음악활동은 내적 갈등·충동·욕구를 표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성내중학교다. 2011년 청소년오케스트라와 악기레슨교실을 시작하며 방과 후 학생의 음악활동을 적극 권장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성내중 이선용 교사는 “우리 학교는 저소득층 비율이 16%로, 가정형편이 어렵고 한 부모 가정 자녀이거나 폭력적 성향이 짙은 학생이 많은 학교였다. 하지만 지난해 교내 학교폭력위원회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이 순해지고 학습 분위기가 변했다”고 말했다. 또 자폐증상이 있거나 왕따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학생,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우울증을 겪은 학생은 사회성이 늘고 크게 밝아졌다는 게 이 교사의 설명이다.

일산백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박은진 교수는 “청소년은 정서조절 역할을 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미숙해 충동성·공격성을 보인다. 하지만 음악이 전두엽을 활성화해 이를 개선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폭력성이 강한 아이는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는 “가해 학생의 뇌 영상을 촬영한 결과,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고 공감하는 뇌의 정서중추인 해마·편도핵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듬·멜로디·템포 등 음악 요소는 정서중추를 자극해 공감능력을 회복시킨다. 음악이 폭력성 감소에 효과적인 배경이다. 어리면 어릴수록 음악으로 인한 정서 치유, 공감 능력 회복 효과가 크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오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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