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김진의 시시각각

한·중·일 지도자, 가문의 대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지금 한·중·일에선 화려한 가문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지도자가 모두 역사적 인물의 후손인 것이다. 이웃 3국에서 이런 일이 생긴 건 현대사에서 처음이다. 이 대결의 승패가 역사를 좌우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시중쉰(習仲勳)의 아들이다. 시중쉰은 1930년대 중국 서북 지역에서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을 이끌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는 국무원 부총리까지 지냈다. 90년대에는 덩샤오핑(鄧小平) 등과 함께 ‘8인 원로’를 구성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다. 기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상공장관을 지냈고 전후 A급 전범으로 징역을 살았다. 기시는 57~60년 총리를 지내면서 일본의 재건을 이끌었다. 기시의 동생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6년(64~70년)이나 총리를 맡았다. 그의 재임 때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다시 일어섰다. 올림픽을 치렀고 패전으로 빼앗겼던 오키나와도 돌려받았다.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기시의 사위이며 아베 총리의 아버지다. 그는 82~86년 외무장관을 지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에게 패해 총리가 되진 못했지만 신타로는 주요 국가지도자였다. 그를 포함하면 아베 가문에선 총리급이 4명이나 나왔다. 4인은 모두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야마구치현은 메이지 유신 주역들을 배출한 권력의 뿌리다. 야마구치 사단은 군국주의로 무장해 한반도 정복과 대동아공영권을 향해 질주했다.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도 이곳 출신이다. 아베 총리의 몸에는 이런 야마구치 피가 흐르고 있다.

 박정희·시중쉰·기시 3인은 20세기 역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부닥쳤다. 개인적으로는 모두 옥고(獄苦)를 치렀다. 박정희는 남로당 활동으로 사형판결을 받았다. 시중쉰은 반당분자로 몰려 16년이나 감옥에 있었다. 기시는 A급 전범으로 옥살이를 했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와 아베의 작은할아버지 사토는 1965년 1차 대결을 벌였다. 한·일 협정 당시 각자가 해당국 지도자였던 것이다. 사토는 협정으로 전후 정리를 끝내고 부흥정책으로 내달렸다. 박정희에게 협정은 생사(生死)의 승부수였다. 국내에선 격렬한 반대시위가 정권을 위협했다. 박정희는 계엄령으로 버티면서 협정을 밀어붙였다. 그러고는 일본에서 받아낸 청구권 3억 달러를 경제개발에 쏟아부었다.

 위대한 가문에서 태어난 국가 지도자는 종종 조상과 경쟁하곤 한다. 그래서 부국강병의 업적주의에 쉽게 빠져든다. 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91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물리쳤다. 그래도 후세인 정권은 살려두었다. 아들 부시는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고 후세인을 아예 없애버렸다.

 시진핑은 화평굴기(和平<5D1B>起)를 넘어 ‘패권 중국’을 향해 돌진한다. 아베는 제국주의 일본의 영화(榮華)를 재현하려 한다. 야마구치 사무라이의 혼이 그의 등을 밀고 있다. 중·일 ‘부흥 전쟁’에서 한국의 박근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을 주요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가문의 대결에서 이는 필수과목이다. 부흥 없이는 대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흥만으론 부족하다. 중국의 패권과 일본의 우경화를 뛰어넘으려면 한 차원 높은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적 흡수통일이다. 통일로 7500만 ‘한국 문명(the Korean Civilization)’을 완성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통일 기반 구축도 국정목표에 넣었다. 그러나 기반 구축만으론 약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통일 시작’이라는 판을 벌여놓아야 한다. 김정은 정권을 단호하게 압박해 변화를 폭발시켜야 한다.

 통일이 되면 2500만 인류가 폭정(暴政)과 기아로부터 해방된다. 이런 일을 이루면 박근혜의 역사는 시진핑이나 아베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들이 패권이라면, 박근혜는 문명이다. 가문의 대결에서 박근혜는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