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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사설

박근혜 대통령 방미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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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내일 출국한다. 대통령 취임 후 동맹국인 미국을 가장 먼저 방문하는 외교적 관례에 따른 것이지만 시기적으로 박 대통령의 이번 방미(訪美)는 각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올해는 한·미 동맹 60주년이 되는 해다. 6·25 종전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의 새 지도자와 미 대통령의 상견례 차원을 넘어 한·미 동맹과 한반도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하는 역사적 의미를 띠고 있다.

 공교롭게 지금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는 극도의 불안정성을 노정(露呈)하고 있다. 체제의 모순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주변국을 위협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핵무기로 남한을 협박해 미국을 압박하는 ‘인질화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교류와 협력의 마지막 상징인 개성공단마저 폐쇄 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군국주의적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며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국수주의적 행보가 가속화할 경우 일본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최대 위협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그에 걸맞은 군사력 증강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위협하고 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싼 중·일 갈등은 자칫 군사적 충돌로 비화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에 맞서 ‘아시아 회귀’를 선언한 미국은 역내 동맹국과의 결속을 통해 대중(對中)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우발적 사고나 순간적 오판이 동북아의 지각변동을 몰고 올 수 있는 위험한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굳건히 하면서도 한반도 분단체제의 부작용과 부담을 최소화하고, 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중차대한 책무를 부여받고 있다. 한국이 처한 딜레마적 상황을 타개하는 초석(礎石)은 한·미 동맹이다. 지난 60년간 한·미 동맹이 안보와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된 것처럼 앞으로도 당분간 한·미 동맹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번영의 초석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지난 60년 사이에 한국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더 이상 변방의 약소국이 아니다. 일방적 대미(對美) 의존 관계에서 벗어나 지금은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로 발전했다. 국제질서와 주변 환경도 근본적으로 변했다. 냉전은 오래전에 끝났고, 중국이 무섭게 부상 중이다. 한국의 위상 변화와 국제 환경의 변화에 맞춰 한·미 동맹의 성격을 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글로벌 파트너십이 진화하는 한·미 동맹의 바람직한 미래상이라고 본다. 양국 정상이 채택할 ‘동맹 60주년 공동선언’과 박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은 한·미 동맹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북한 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의제임에 틀림없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지난 20년간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지금 워싱턴은 극심한 무력감과 피로증세를 보이고 있다. 평양과의 대화와 협상을 주장하기 힘든 분위기다. 북한이 먼저 구체적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기 전에는 대화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 백악관의 단호한 입장이다. 도발에 대한 보상 성격의 대화는 절대 않겠다는 것이다. 이란·시리아 등 중동 문제에 밀려 우선순위에서도 처지고 있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는 워싱턴의 분위기는 우리에게 도전이자 기회다.

 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북핵은 미국에 비확산이란 원칙의 문제지만 우리에겐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각인시켜 북핵의 우선순위부터 끌어올려야 한다. 또 북핵은 한국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미국과 중국이 작심하고 함께 나서야 풀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협력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면 이는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이고 미·중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박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나름의 구상을 갖고 워싱턴에 가야 한다. 이를 토대로 한·미 정상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일명 서울 프로세스)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이 남북관계와 북한 비핵화의 철저한 연계였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둘 사이의 유연한 연계라고 할 수 있다. 상관 관계의 모호성을 둘러싼 한·미 간 갈등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워싱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만큼 박 대통령은 분명한 설명으로 오해 소지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는 북핵 문제 해결도 어렵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예정된 시간은 40분에 불과하다. 오찬까지 포함해도 두 정상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인간적 교감을 통해 신뢰를 쌓는 것이다. 터놓고 얘기를 나누고 서로 믿을 수 있는 인간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해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의례적 성격의 만남으로 끝내기에는 이번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가 너무 크다. 박근혜-오바마 관계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성공적 정상회담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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