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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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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들어 청와대의 달라진 풍경 중 하나는 밤늦도록 키보드를 치는 대통령이다… 혁신과 관련해 대통령이 공무원에게 보낸 편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이 직접 친 원고다. 이헌재 부총리의 사퇴와 관련해 쓴 편지 역시 대통령이 직접 쓴 원고다. 앞으로는 글을 더 자주 쓸 예정인 듯하다."

지난달 21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윤태영 부속실장이 남긴 글이다. 실제로 대통령의'대국민 인터넷 담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음날'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이 올라오더니 그 다음날에는 민감한 외교문제를 다룬'한.일관계 관련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 게재됐다. 네티즌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어서 지금까지 11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유력 대권주자 중 하나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도 요즘 밤늦게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개인 홈페이지에 '일요일에 쓰는 편지'를 연재하고 있다. '편지'형식이라지만 정치.외교 등 현안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 게재될 때마다 언론과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는다. 의원실 관계자는 "장관이 글의 주제에 대해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등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다"며 "현재 편지를 고정적으로 배달받는 네티즌은 2000여 명으로 앞으로 10만 명까지 늘려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언론의 취재원이던 정치인들이 이제 온라인에서 직접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홈페이지.블로그를 유력 매체화하고, 직접 네티즌들을 겨냥해 '인터넷 전용 콘텐트'를 양산한다. 이들이 생산하는 콘텐트에는 주로 '개인적 소회'에 그쳤던 예전과 달리 정치 쟁점이나 현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콘텐트는 순식간에 각종 인터넷 매체와 포털로 옮겨지고 여기에 네티즌들이 가세해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다. 실제로 행정수도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의 글이 올라오자 이틀 뒤 이명박 서울시장이 이를 반박하는 형식의 글을 서울시 홈페이지에 게재했고, 이후 온라인상에는 네티즌 간 치열한'대리전'이 펼쳐졌다. 최근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이 같은 당 유시민 의원을 비판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린 일이나, 얼마 전 친여 논객인 이기명씨와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 간에 벌어진 '효녀심청.논개 논쟁'도 이와 유사한 경우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성균관대 백선기 언론정보대학원장은 '효율성'을 꼽는다."기존 매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왜곡과 굴절을 막고 대중과 바로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창구"라는 것이다. 네티즌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정치인과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듯한 기분" "진솔한 느낌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아 좋다"는 것.

하지만 홈페이지.블로그가 공인들의 공적인 발언을 담기에는 공공성이나 신뢰성 면에서 아직 문제가 많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이 쓴 한.일관계 관련 글에 대해 일본 언론이 "인터넷에만 공표된 것으로 이는 국내용"이란 해석을 전한 것이 단적인 예다. 또 정치인들이 온라인에 발표하는 글의 상당수가 '사적인 서신'형태인 것도 "만약의 경우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단"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앙대 성동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인들의 홈페이지.블로그가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하지만 공적인 매체로 인정받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일부 책임 회피나 악용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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