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베토벤과 평생을 함께한 수제자 대우 받았던 체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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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베토벤 / 체르니(오른쪽)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였던 1791년도에 태어난 체르니는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가진 첫 연주회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했다.

이듬해부터 4년간 베토벤으로부터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사사하며 수제자 대우를 받았던 그는 한때 베토벤의 피아노 교수법에 반대하는 아버지의 이견으로 인해 잠시 헤어지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베토벤이 화해함으로써 그에게 되돌아간 후로는 1827년 베토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제지간을 유지했다.

자신이 작곡한 다섯 개의 피아노협주곡 중 제4번까지는 스스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초연했던 베토벤은 그의 피아노협주곡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돼 나중에 ‘황제’라는 부제까지 붙은 피아노협주곡 제5번의 초연은 악화된 귓병 등 건강상의 이유로 다른 연주자에게 맡기게 된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하던 1809년도에 작곡한 이 곡의 역사상의 초연은 1811년 11월 2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오르간 연주자였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의 독주와 더불어 이뤄졌으나 1812년 2월 15일 빈에서의 초연은 체르니가 독주를 맡았는데 이후로 베토벤 생전에는 다시 연주되지 않았다. 전쟁의 와중에 오스트리아를 떠나 라이프치히에서 이뤄졌던 역사상의 초연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르니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5번의 실질적인 초연자로 거론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 흔히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이 교향곡에 표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운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베토벤이 제1악장의 첫 모티브를 가리켜 “운명이 나의 문을 이렇게 두드린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다름 아닌 체르니였다고 한다. 베토벤의 그 말을 체르니가 아닌 자신이 들었다고 주장하는 베토벤의 비서이자 전기작가 안톤 쉰들러가 남긴 베토벤의 일화 중 많은 부분이 날조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반면에 베토벤의 수제자였던 체르니와의 대화내용 만큼은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에 대한 체르니의 증언은 또 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제1악장 도입부의 동기는 베토벤이 자주 산책을 나갔던 독일의 프라터 공원에서 들은 ‘노랑촉새’의 울음소리라는 주장인데 이 또한 사실과는 다른 허구라는 비평가들의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체르니의 주장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베토벤의 수제자였던 그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말을 만들었다. ‘나폴레옹은 대포 소리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베토벤은 새 소리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체르니의 결혼’을 검색하면 그가 결혼했는지 여부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체르니의 아내’ ‘체르니의 자식’을 검색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니 그 또한 스승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독신으로 살았던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밖에 없다. 체르니의 교본은 널리 알려졌으나 그의 삶은 묻혀져 있다.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5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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