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에 기능장 도전 '9전 10기' ··· "대학강단서 후배 양성 뿌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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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전 10기의 도전으로 국가공인미용 기능장을 취득하며 인생역전에 성공한 최미현 교수는 "배움은 끝이 없다"고 말한다.

흔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벌이까지 하는 사람을 가리켜 ‘프로’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찌 인생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되겠는가. 많은 직장인들은 생계를 유지하고 삶을 지탱하기 위해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도 ‘직장’이라는 전쟁터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때로는 늦었지만 자신의 꿈을 찾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인생 2막을 열고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최미현 교수를 만나 행복한 삶을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난 아직 늦지 않았어

올해로 60살을 맞이한 최미현 교수. 그의 이름 석자 뒤에는 국가공인미용 기능장, 두피관리사, 대학교수 등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말끔한 차림에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동안 얼굴로 그저 ‘팔자 좋은 여자’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최 교수의 인생 역전은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다.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일하다 26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한 최 교수는 아이를 낳고 시댁의 식당일을 도와가며 지냈다. 더 좋아질 것도, 그렇다고 더 나빠질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최 교수에게 30살로 접어들던 어느 날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려서는 눈썰미가 있고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주변 어른들은 저를 보고 나중에 크면 ‘한 인물하겠다’는 소리를 많이 하셨죠. 학창시절에는 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모든 꿈들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하루 매일 반복되는 똑 같은 일상이 지루하기도 했지요. 그때 우연히 미용을 접하게 됐어요. 미용기술을 배워두면 사회생활도 할 수 있고 살림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요즘은 고등학교 때부터 미용을 전공으로 정하고 기술을 익히는 학생들이 많은데 최 교수는 30살이 다 되어서야 미용학원에 다니게 됐다. 다행히 시댁의 배려로 아이를 맡겨놓고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눈썰미와 손재주를 인정받았던 최 교수는 어렵지 않게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작은 방이 딸린 가게를 얻어 미용실을 개업하게 됐다.

배움에는 끝이 없어

미용실을 차린 후 차츰 단골 고객도 생겨 신이 난 최 교수는 더욱 열심히 일을 했고 주변 사람들도 최 교수의 성실함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92년부터 98년까지 미용협회 천안시 지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천안시지부 일을 맡아 하다 보니 미용기술에도 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가공인미용 기능장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이다. 당시 나이가 50살이나 됐지만 최 교수에게 나이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미용사면 다 같은 미용사인줄만 알았어요. 하지만 국가가 인정해주는 기능장이라는 것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도전해보기로 했죠. 조금 늦은 나이였지만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듯 기능장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러나 미용 기능장은 미용사 자격증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최 교수는 2005년에 기능장 공부를 시작해 무려 9번이나 고배를 마신 끝에 4년이 지나 10번째 도전 만에 기능장 자격을 취득하게 됐다.

 “몇 번이나 포기할까도 생각했어요. 그래도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달려들었죠. 결국 기능장 자격도 제게 허락되던군요.”

 고졸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던 최 교수는 비슷한 시기에 대학 공부까지 시작했다. 무엇인가 하나를 성취하고 나면 또 다른 배움에 목이 말랐다. 호서대 사회교육원에서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사 학위를 취득한 최 교수는 곧바로 대학원에 등록했고 석사까지 마쳤다. 모든 학생들이 ‘왕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나이였지만 최 교수에게 배움은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나 마찬가지였다.

 늦은 나이에 시작해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일궈가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는 최 교수는 남서울대 사회교육원 뷰티 미용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제는 어린 시절 바랐던 선생님의 꿈까지 이뤘다. 특히 최 교수는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을 맡고 충남기능선수회에서 재능기부를 통한 봉사활동을 펼치며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과시하고 있다.

후배 양성에 힘 쏟을 때

남들은 ‘과연 될까’라는 의문을 가질 때 최 교수는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거침없이 도전했다. 그 결과 그저 평범하기 이를 때 없었던 인생을 스스로 원하는 인생으로 바꿔 놓은 최 교수는 이제 또다른 도전을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내가 그랬듯 늦은 나이라고 망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절대 늦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학생들을 잘 지도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요. 내가 가진 기술과 미용에 대한 지식을 모두 쏟아 붓고 싶어요.”

 최 교수는 대학 사회교육원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는 일 외에도 틈만 나면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실질적인 미용기술을 익히는 후배들을 위해 마스터 과정을 지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루 24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지만 최 교수는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최 교수는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누구라도 새로운 인생 제2막을 꿈꾸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도전해 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최진섭 기자 js3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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