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수능 안보고 대학 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해 말 독학사 시험에 붙은 송기정(宋基貞.20.여)씨는 3일 서강대 편입학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다음달부터 법학과 '3학년 신입생'이 되는 것이다. 고교 졸업 3년 만이다.

나이로 따지면 재수를 한 셈이 된다. 중학교 때 반에서 1, 2등을 다투던 그는 고교 때 성적이 떨어지면서 절망적인 수능성적에 재수도 포기했었다. 대신 선택한 게 독학사를 거쳐 대학에 편입하는 길.

덕성여대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40, 50대 어른들과 함께 공부했고 결국 꿈을 이뤘다. "음악동아리 활동과 해외 배낭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고 宋씨는 기분좋게 말한다.

전문대 출신인 대한항공 직원 尹시내(26.여)씨는 3월 경기대 대학원에 간다. 한진그룹 사내대학인 정석대에서 경영학과 학사학위를 따낸 것이다. "내친 김에 석사코스를 밟기로 했어요.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생활이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네요."

'고교 졸업→수능시험→대학 입학→사회 진출'이라는 고정틀이 깨지고 있다.

학사학위를 따는 길이 다양해지면서 宋.尹씨 같은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이다.

혼자 공부해 시험에 합격하면 학위를 주는 독학사 제도에 이어 전문학원 수강이나 자격증 취득 경력 등을 학점으로 환산해 대졸 자격을 주는 학점은행제가 자리잡아가는 것이다.

아직은 초기단계지만 기업이 운영하는 소위 '사내대학'도 기여를 한다. 외부 교수를 초빙해 사원들에게 정식 학위를 밟도록 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한진그룹(정석대학)과 삼성전자(삼성전자 공과대학) 두 군데에만 있지만 머지않아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자리잡는 '대안대학'=지난해 독학사를 거쳐 대학.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은 모두 3백65명. 46명의 학위취득자를 배출한 1993년 첫해 때보다 여덟배나 늘었다.

98년 도입된 학점은행제를 통해 대학에 편입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0년 1백31명에서 지난해에 8백73명으로 늘었다.

이처럼 다양한 경로를 거쳐 학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정보를 주고 받는 인터넷 사이트만도 수십개가 생겼다.

교육인적자원부 평생학습정책과 유혜숙(柳惠淑)서기관은 "이런 제도들은 '대안대학'이라고 부를 만하다. 특히 대학 진학과 사회 진출이 하나의 경로로만 진행되는 데서 오는 입시.취업 체증과 부작용을 줄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규과정 능가하는 경쟁=새로운 관문이지만 참여 인구가 늘어나면서 그들만의 경쟁도 치열해진다. 섣불리 대들었다가는 또다른 좌절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독학사 시험에서는 응시자의 60%가 탈락했다. 대학 3학년으로의 편입 경쟁도 갈수록 치열하다.

독학학위검정원 이진숙(李眞淑)교육연구관은 "독학사 취득은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라며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조언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학점인정 기관이 늘어나는 만큼 관련 제도들도 뒤따라 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실한 운영을 막는 일,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 또는 교류하는 시스템 구축 등이다.

학점은행제 정보교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조상훈(趙尙勳)씨는 "관련 정보 교류 체제가 미흡해 학위취득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만 석달이 걸렸다"고 말했다.

강주안.김필규 기자 <joo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