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낙수|출장 갔다 온 남편 가계부 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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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겉 핥기」라는 빈축 속에 강행된 공화당과 10·5구만의 국정감사도 3일로써 그 끝을 맺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불참한 이번 국감은 정부의 비정을 파헤치고 추궁한다는 국감본래의 의미보다는 정부·여당이 연석회의라도 연 것처럼 가족적분위기 속에서 시종 되었다는 느낌. 따라서 알맹이 있는 감사결과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감사반이 『잘해보시오』라고 격려(?)하면 『잘 해보겠습니다』란 응답만을 되풀이해왔다는 중평이다. 공화당이 마련한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온 「단독국감」이 홀린 낙수를 주워모았다.

<기자 출입도 금지>
○…이번 감사에서 제법 굵직굵직한 문제점이 터져 나올 만한 정주관계부처의 감사에는 거의 문을 닫고 집안끼리 진행하는 「비공개회의」로 시종 했는데 간혹 공개사의인 경우『장소가 좁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출입을 막아 이것도 사실상 『문을 연 비공개회의』-.
공화당은 당초 야당 없이 실시하는 국정감사를 대부분 공개, 기자들을 야당의원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하기로 당론이 기울어졌으나 막상 감사에 들어가자 의원들의 『인기를 노리는 정치적 발언』이 쏟아져 나와 결국 비공개회의로 변경되고 말았다는 것.
감사반의 어떤 의장은 『비공개회의를 하니 오히려 원칙문제에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다』고 자랑했지만 비공개감사를 받은 모국영기업체의 한 간부는 『지금까지 여러 번 국정감사를 받았지만 이번 감사처럼 「스무드」하게 넘어간 것은 처음이었다』고 기뻐하는 것을 보면 비공개감사의 내용은 보나마나한 것 인 듯.

<″그게 바른 자세냐〃>
○…서봉균 재무부장관은 31일 산은의 연체 및 차관대불업체의 처리문제를 따지는 재경위 감사반에게 산은의 증자를 요청했다가 감사반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이날 22억에 달하는 연체와 10억이나 되는 대불업체에 대한 대책에 관한 답변을 하던 서 재무는 『같은 집안』끼리라 믿은 나머지 그랬던지 『문제해결의 가장 쉬운 방법은 산은에 대한 정부의 미불입자금을 불입하도록 내년 예산에 반영시켜달라』고 요청했던 것. 이에 박종태·김용순의원 등이 한꺼번에 일어나 『연체나 대불의 회수는 주식공매 등으로 산은자체가 해결할 것이지 국민의 혈세로 된 예산을 특혜업자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끌어달라는 것이 재무장관의 올바른 자세냐』고 쏘아댔다고.
이 문제는 지난달26일 산은감사 때도 중점적으로 논의되었는데 한 감사원이 『이처럼 연체 및 대불이 많은 것이 누구 책임이냐』고 따지자 이정환 산은총재는 『물론 제 책임입니다』고 말하면서 「물론」이라는 말에 「액선트」를 주더라는 뒷 얘기.

<「10·5구」는 침묵>
○…이번 국감을 통해 가장 괴로운 처지에 빠진 것은 이른바 「의족」구실을 위해 발족한 「10·5구」소속의원들로 그들이 야당역할을 해줄 것을 바라는 공화당의 「은근한 기대」 (?)에도 불구하고 몇몇을 제외하곤 거의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
공화당원내부총무까지 지냈던 농림위의 C의원은 『이번 감사가 감사의 구실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의심하지만 박 대통령이 결정 지시한 것이니 감사장에는 꼭 나온다』면서도 천장만을 쳐다보며 담배만 연거푸 피우고. 「10·5구」의원 중에서는 김익준 (상공위) 의원이 비교적 다변파로 서울시에 대한 감사 때 서울시가 진 부채와 공영주차장 문제를 추궁. 김 시장이 『서울시의 부채는 「창조된 토지」 매각으로 전부청산 되었으며 공영주차장 문제는 추후 서면으로 내겠다』고 어물어물 넘겼으나 그 이상 따지지 않고 말았는데 밖으로 나오는 김 의원에게 시의 모 간부가 『오늘 참 신랄하게 질문하셨다』고 아첨 비슷이 굽실거리자 『뭐, 공포만 놓았지요』라고 대꾸하기도.

<관광기회도 놓쳐>
○…지방관서 감사를 하던 보사위국감반 수행원들의 무임병거 소동이 고위층의 노여움을 샀다는 소식이 들리자 31일부터 지방감사에 들어간 상공·농림 두 위원회는 사전대책회의를 여는 등 잡음의 미연방지에 부심.
상공위는 30일 아침 관폐(?)를 막는 사전대책회의를 열어 수행원들의 차표는 일괄해서 구입하기로 했으며 숙소는 개별적으로 정하고 출발도 개별적으로 하기로 결정.
한편 31일부터 경북도와 전남도를 거쳐 제주도까지 감사키로 된 농림위는 미리부터 비서관들을 수행시키지 않기로 했는데 한 비서관은 『모처럼 제주 「관광」의 기회를 놓쳐 서운하지만 뜻밖의 사고를 내는 것보다야…』라면서 자위.

<「교장운동」말썽>
○…화기애애한 진행으로 「경월감사」란 별칭까지 가졌던 국정감사에서 느닷없이 욕설이 터져 나와 모처럼 「부드러웠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촌극 한 토막.
31일 문공위의 서울시교육위감사에서 이성수 의원이 시교위 모국장의 답변에 격노, 욕설을 퍼부으며 『내가 교장전임운동을 하러왔단 말이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데….
사건의 발단인즉 이 의원이 소풍가서 어린이 익사 사고를 낸 D국민교장 인책문제를 따지자 이 국장이 교장에게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면서 『후임교장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공연히 사고를 크게 떠벌린다』고 불만 비슷이 답변, 이 의장의 신경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종은 누굴 위해?>
○…이번 국정감사는 한마디로 『출장 갔다 온 남편이 부인이 만들어 놓은 가계부를 보는 격』이라고 평가되고 있지만 감사반에 따라서는 제법 감사했다는 기록을 남기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이기도….
30일 대한주택공사를 감사한 최치환 건설위원장은 『마포 「아파트」등 주택공사가 짓는 각종 「아파트」에 건설부나 주택공사의 직원이 보증금도 없이 우선적으로 입주,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호통을 치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고 비꼬면서 일침.
1일 철도청산하「홍익회」를 감사한 교통위의 우재필 의장은 『2, 3년 전에 수의계약으로 매각처분한 철도강생회관의 대금은 모두다 받았느냐』고 추궁-「홍익회」의 한 간부는 『제가 부임하기 전에 체결한 계약이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감사원들은 일제히 『과거는 묻지 마세요, 이런 말이겠지』라고 농담.

<부패한 곳 중의 하나>
○…31일 서울시만을 감사키로 했던 보사위는 이날하오 시내중구보건소를 예고 없이 급가, 보건소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이날 기전감사에서 전 보사부장관 오원선 의원은 『공화의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이라고 전제, 『보건소는 정부의 세수증대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요즘 가장 부정부패한 곳에 보건소가 들지 않느냐』고 따지는 바람에 보건소장은 아무런 답변도 못하고 얼굴만 붉혔는데 보사위의 다른 의원들은 오 의원의 말이 더 무심하다고 생각했던지 『앞으로는 잘하라고 지도 편달하는 것이니 그리 알라』고 풀이 죽은 보건소직원들을 다시 안심시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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