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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이버 보안관’성공 비결은 인재 제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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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이민 34년째. 식당 경리에서 출발, 연 매출 규모 3000억원인 IT기업을 운영하는 이수동 회장은 “지금도 시베리아에 가서 살라면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강정현 기자]

미국 정보기술(IT) 솔루션 기업 STG 이수동(64) 회장은 현지에서 ‘국가 사이버 보안관’으로 통한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 사이버 보안에 참여하며 연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직원은 1700여 명. 2003년엔 미 의회가 제정한 ‘엘리스 아일랜드 상’을 수상했다. 국가 발전에 기여한 이민자에게 주는 상이다. 이 회장은 2일 모교인 고려대에서 명예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고려대는 그의 기업가 정신을 높이 샀다.

 1일 오전 고려대 공과대 건물에서 만난 이 회장은 자신의 철학에 대해 “스스로의 재능에 도전하고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 부모를 잃은 그는 큰형의 도움으로 어렵게 공부했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동양방송(TBC) 기획실에 입사했다. 38년이 지났지만 신입사원 면접에서 인재를 직접 고르던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의 모습이 그는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훌륭한 인재 확보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은 그 면접 때부터 생긴 겁니다.”

 ‘큰 세계에서 승부를 내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는 입사 4년 만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미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경리로 일한 식당이 문을 닫으며 이민 1년 만에 실직자가 됐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보조로 겨우 생계를 이었다. 낮에는 돈을 벌면서 야간 2년제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조수로 남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있었죠.”

 주경야독 끝에 그는 미국 통신업체 MCI의 기술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연봉 8만 달러의 안정된 자리를 그는 박차고 나왔다. 86년 집 차고에 책상 하나를 두고 1인 기업 STG를 창업했다. “4시간만 일해도 우수사원으로 인정받는 데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내 꿈을 펼쳐보고 싶어 사표를 쓴다”고 하자 당시 MCI는 이 회장이 맡고 있던 프로젝트를 통째로 STG에 넘겨주기도 했다. 그의 사람됨과 능력을 믿었다는 얘기다.

 마감시간 1분만 지나도 제안서를 받지 않는 미국 비즈니스계에서 그는 이민자가 갖는 어려움을 피부로 느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소수민족이란 약점을 강점으로 돌렸다. 계약의 일정량을 소수민족에게 할애하는 미 정부의 제도를 활용했다. “지금도 시베리아에서 가족들과 살라면 살 수 있다. 내 머리 속은 언제나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그가 사업을 하며 한시도 잊지 않는 원칙이 있다. TBC입사 때 가슴에 새겼다는 ‘인재 제일주의’다. 백악관에서 컴퓨터 업무를 담당한 인사를 공들여 영입해 미 국무부의 첫 일감을 따낸 게 대표적이다.

 그는 특히 “회사엔 제한이 없는 게 두 가지 있다”고 했다. 음식과 보너스다. 회사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떨어지는 법이 없다. 한여름 프로젝트의 마감일을 앞두곤 부인 안나리씨가 옥수수를 삶아 직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수주를 해서 이익이 나면 바로 직원들과 나눈다. “직원이 만족해야 고객이 만족한다”는 게 이 회장의 지론이다.

 이 회장은 드라마 ‘태왕사신기’ ‘시크릿가든’에 출연한 배우 이필립(32)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1남 3녀 중 둘째인 필립씨는 IT 사업을 하다가 2007년 돌연 한국에서 배우로 데뷔했다. 이 회장은 “하고 싶은 일은 세 번까지 하게 해주자는 게 교육 방침”이라면서도 “언젠가 사업가로 돌아오지 않겠냐”고 했다. 2005년 이 회장과 필립씨 등 세 자녀가 동시에 조지워싱턴대에서 학위를 받아 미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취업난을 겪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위기일수록 자신의 재능을 찾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사람들을 연결해 기회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다.

글=김소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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