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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여성 미의 기준, 한국식으로 바뀌고 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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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레이스 리는 “아키노의 연인으로 나를 소개한 기사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좀 놀랐다”고 했다. 신동연 선임기자


“열 살은 어려진 기분이에요.”

 지난달 29일 한국 출신 필리핀 방송인 그레이스 리(31·한국 이름 이경희)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닷새 전 자신이 진행하는 필리핀 TV 방송의 한국 관광 특집 프로그램 촬영차 내한한 그는 4박 5일간 서울 강남의 유명 피부과, 한방병원의 미용·웰빙 상품을 집중 체험했다. 한국관광공사의 후원을 받았다. 한국관광공사 마닐라지사는 올해부터 필리핀 상류층을 겨냥한 한국 미용 및 웰빙 의료 관광상품을 본격 홍보 중이다.

그레이스 리는 지난해 필리핀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53) 대통령의 22세 연하 연인으로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필리핀 언론은 “두 사람이 올 초 결별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출국 직전 중앙일보와 만난 그는 인터뷰에 앞서 ‘사생활은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 한국의 의료 관광을 체험한 소감은.

 “미리 내 몸을 점검하고 식이요법 등으로 약한 곳을 보완하는 예방 개념이 마음에 들었다. 한방병원의 양·한방을 혼용한 처방도 인상적이었다. 여드름이 나도 피부 겉뿐 아니라 사상체질,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몸 안에서부터 다스리더라. 필리핀은 서구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플 때만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게 일반적이다. 양·한방을 넘나들며 개개인에 꼭 맞게 처방하는 한국 의료 시스템은 필리핀 상류층에게도 어필할 거라고 생각한다.”

 - 한국 미용·의료 관광하면 성형수술을 먼저 떠올리지 않나.

 “필리핀에도 코가 낮아 성형수술로 높이는 여성이 적지 않다. 한국 여성이 주로 하는 쌍꺼풀 수술은 별로 큰 수술도 아니다. 서구에서는 성형수술로 그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변신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만 두고 ‘성형대국’ 운운하는 건 불공평하다.”

 필리핀 방송가에서 그레이스 리는 대표적인 ‘친한파’로 불린다. 열 살 때 부모를 따라 이민간 뒤 20년이 넘었지만 한국 국적을 고수하고 있는 그는 최근 필리핀에 거세게 부는 한류를 반색하며 설명했다.

 - 필리핀의 한류는 어느 정도인가.

 “5년 전 드라마 ‘대장금’이 필리핀에서 40%의 시청률을 기록한 뒤 한국 드라마가 잇달아 히트하고 있다. K팝의 인기는 필리핀의 미의 기준까지 바꾸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필리핀 사람들은 코가 오뚝하고 눈이 크고 얼굴이 흰 서구형 미인을 선호했다. 그런데 K팝 열풍 후 한국의 미가 더 강세다. 머리카락을 까만색으로 염색하는 것도 유행하고 있다.”

 - 외국인으로서 방송 활동을 하는 게 힘들지 않나.

 “나는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개인적으로 자주 한국에 온다. 그때마다 필리핀에서 먹기 힘든 돼지곱창·산낙지를 꼭 챙겨 먹는다. 한국 사람과 결혼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한국식으로 키우고 싶다.”

 - 한국에선 ‘필리핀 아키노 대통령의 연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에 관한 한국의 기사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솔직히 놀랐다. 그 일이 한국에서까지 얘깃거리가 될 줄 몰랐다. 내가 한국인이니까, 친정엄마 같은 마음으로 관심을 갖는 거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레이스 리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실시간으로 한국 체험기를 자랑했다고 귀띔했다. 그의 트위터(@graceleemanila) 팔로 수는 15만 명에 달한다. 그는 “작년에 필리핀을 찾은 한국인의 수는 100만 명이나 됐지만, 한국을 찾은 필리핀 사람은 33만 명에 그쳤다”며 “앞으로 더 많은 필리핀 사람이 ‘우리나라’에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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