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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미래] 꿈의 에너지 수소가 세상을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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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조금 못된 시각, 창백한 겨울 해가 울퉁불퉁한 화산암으로 뒤덮인 아이슬란드의 황무지 위로 느릿느릿 떠오른다. 화학교수인 브라기 아르나손은 뿌옇고 푸르스름한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웅덩이를 굽어보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 30년 동안 아르나손은 화산활동의 에너지를 이용해 H2O(물)에서 H(수소)를 분리해 화석연료에서 해방된 최초의 ‘수소경제’를 탄생시키겠다는 꿈을 키워왔다.

그는 장갑 낀 손으로 지열발전소가 하얀 김을 내뿜는 수평선을 가리키며 “이제 그 첫걸음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 자식들은 세상이 확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밑의 손자 세대는 이 새로운 에너지 경제에서 살게 될 것이다.”

레이캬비크 서쪽의 광야에 불어오는 살을 에는 듯한 찬 바람도 못느끼는 듯 아르나손은 자신에게 ‘수소교수’라는 별명을 붙여준 비전을 설명했다. 우선 아이슬란드의 모든 자동차와 트롤 어선에 달린 휘발유 엔진을 점진적으로 (美 우주선에 설치된 것과 같은) 수소연료 전지로 움직이는 전기모터로 바꾼다.

한편 아이슬란드의 활화산들과 거센 강줄기들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해 순수한 수소를 생산한다.

아르나손은 심지어 전세계가 아이슬란드의 뒤를 따르는 시대가 오고 자국이 ‘북반구의 쿠웨이트’가 돼 세계에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꿈을 동포들에게 심었다. 그러나 그 꿈을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말에 신경쓴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발게르뒤르 스베리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상공장관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으며 말했다. “너무 황당하게 들렸다. 물을 자동차 연료로 쓰다니?”

이제는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유정이 바닥날 경우의 대체 에너지로 수소를 꼽는 전문가들 중에는 미국 정부의 석유 전문가와 GM·포드社의 미래파들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계획은 이제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셸, 그리고 수소경제를 향한 최초의 사회적 실험에 수천만유로를 쓸 계획인 유럽연합(EU)의 후원을 받는다. 앞으로 몇달 내 아이슬란드는 수소 동력 버스 3대를 생산하고 현장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충전소 건설을 시작한다.

만사가 순조로우면 이 시범운용은 2005년 승용차와 어선으로, 30∼40년 내 모든 차량으로 확대된다. 다른 나라들도 뒤따를 것이다. 문제는 그 시기일 뿐이라고 美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의 기술자 마거릿 맨은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수소로 가야 한다. 화석연료와 결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심지어 지금도 수소경제의 미래는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수소는 물속에 자연상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공급한계는 바닷물만큼이나 무한정이다. 그리고 순수한 수소는 무해 가스이며 독성액체가 아니어서 유출돼도 공기 속으로 그냥 사라진다. 수소전지는 수증기만 방출하며 전기모터는 거의 소음을 내지 않는다.

수소연료 발전에 증기와 물만을 이용할 아이슬란드의 경우는 이 모든 것이 더 더욱 신기루처럼 보인다. 그 과정은, 일단 H2O 분자에 전자이온으로 충격을 가해 수소를 분리하고, 이 수소는 연료전지 속에서 산소와 재결합해 전기를 띤 이온이 모터를 돌리게 만들고, 부산물로 물분자가 나온다.

다시 말해 아르나손은 천연 에너지를 사용해 쓰레기라고는 수증기밖에 배출하지 않는 강력한 수소연료를 만들 계획이며 그 결과 온실가스도, 지구온난화의 위험도 없는 청정 에너지의 무한공급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아르나손은 이것이 확실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 그는 빙하 위에서 살다시피 하며 화학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 아이슬란드 전역의 온천수 매장위치를 지도화했다. 요리사들이 땅속에 반죽을 묻는 방법으로 빵을 굽고, 농민이 뒷마당을 파다보면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니만큼 온천수가 풍부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르나손은 온수의 분포를 파악해 거대한 천연지열 에너지 매장량을 밝혀낸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것은 중대한 발견이었다. 아이슬란드는 늘 에너지 부족에 시달려왔다. 900년대 노르웨이 바이킹족들이 세운 그 나라로서는 사무치는 현실이었다. 자체 화석연료는 없고 한파와 어업 중심의 경제구조상 에너지 수요는 막대한 상황에서 아이슬란드는 외국 석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석유파동 때 큰 타격을 받았고 1944∼95년에는 인플레가 평균 17.6%나 됐다. 그처럼 에너지 예속이 심한 나라가 “무슨 수로 이 상황을 바꿀까”를 고민하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고 아르나손은 말했다.

아르나손은 미친 사람으로 치부되리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처음부터 수소를 그 해답으로 꼽았다. 1970∼80년대의 수소전지는 덩치가 크고 비싼데다가 美 우주계획에나 사용된다는 점에서 아르나손의 꿈은 더 더욱 황당하게 보였다. 아르나손은 1978년 떨리는 가슴으로 이 주제에 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뒤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에너지 관련 인사들 사이에서 늘 스승으로 불렸다”고 아이슬란드의 국영발전회사인 란드스비르쿤의 부사장 요한 마르 마리우손은 말했다. “본인은 수소교수라는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놀린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러다가 세상이 바뀌었다. 다국적 석유회사와 자동차 회사들이 ‘차세대 석유’로서의 수소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1990년대 들어 아르나손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최초의 돌파구는 1992년이었다.

캐나다 밴쿠버의 밸러드 파워 시스템스社가 첫 수소동력 버스를 선보였다(레이캬비크에서 운행될 버스들의 원조격이었다). 놀랍게도 밸러드의 버스는 1백50킬로와트의 힘을 냈는데 그것은 대다수 기술자가 생각한 수준의 15배에 이르는 성능이었다. 다임러-벤츠가 뛰어들어 2억5천만달러를 투자했고 그들은 함께 아이슬란드로 눈을 돌렸다.

아이슬란드는 딱 좋은 모델이었다. 기상조건이 새 자동차 모델의 내구성을 시험하기에 적합하게 혹독하고 28만명밖에 안되는 인구가 대체 에너지의 실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슬란드의 수소교수는 다임러의 연료전지 연구팀장 페르디난드 패닉과 여러해 전부터 이런저런 회의를 통해 얼굴을 익힌 사이였다. 다국적 대기업의 거물급 과학자가 거들고 나서자 그동안 의문을 제기하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1998년 다임러의 간부들이 계약차 레이캬비크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의 관심 때문에 회담장을 비밀장소로 옮겨야 할 정도였다.

자동차 업계의 거인이 관심을 보이자 다른 세계적 기업들이 꼬여들였다. 그 결과 아이슬란드 정부가 51%를 소유하고 나머지 49%를 다임러크라이슬러, 셸 오일, 노르웨이의 노르스크 하이드로 등이 소유한 ‘아이슬랜딕 뉴 에너지’가 설립됐다.

유럽 재계는 주민들이 서로 다 알고 지낼 정도로 작은 도시 레이캬비크에서 일이 너무 빨리 진행되는 것을 보며 놀랐다. EU가 관심을 보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버스사업 부문에 현재 2백85만유로를 할당했다.

EU는 영국·독일·스페인 및 기타 적어도 다른 4개국에서 비슷한 버스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아이슬란드에서 되면 다른 나라에서도 될 것”이라고 패닉은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그 시발점으로 안성맞춤이다.”

아이슬란드는 또 유달리 야심이 많다. 밴쿠버와 팜 스프링스 등의 도시가 이미 수소버스를 배치했지만 아이슬란드는 화석연료를 완전히 몰아내는 시도를 최초로 하는 나라를 꿈꾼다. 온실가스를 없앤 최초의 사회가 되겠다는 것이다. 아이슬랜딕 뉴 에너지는 광범위한 시장조사를 할 예정이다.

수소 충전소와 수소 자동차의 설계를 다듬고 사회가 수소경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가지 장애물은 비용이다. 아이슬랜딕 뉴 에너지는 아무리 좋게 잡아도 수소연료가 기름값의 배는 되리라고 본다(l당 주행거리도 배가 되겠지만).

미국 버지니아주의 국제규격위원회(ICC)는 4월 중으로 수소경제를 총괄할 화력·전기 및 공업연료 규정 초안을 작성하기 위한 공청회를 연다. 6월에는 국제표준화기구(IOS)가 휘발유만큼 인화성이 강한 수소를 담을탱크·컨테이너·충전소를 위한 안전지침을 검토할 것이다.문제는 시기와 비용이다.

셸 하이드로젠은 미국에서 수소연료 공장과 충전소를 세우는데 드는 비용이 1백90억달러, 영국에서는 15억달러, 일본에서는 60억달러라고 추산했다. “수백만달러면 충분한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와 비교되는 규모”라고 기업 경영자 돈 허버츠는 말했다. “또 아이슬란드에서는 사람들이 차를 몰고 섬을 나갈 일이 없어 다른 나라에서 인프라가 갖춰지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아이슬란드는 다른 면에서도 독특하다 하겠다. 막대한 천연지열 에너지 매장량은 유럽에서 단연 독보적이며 어떤 사람들은 수소를 유럽에 수출하는 신흥산업을 꿈꾼다(우선 수소를 운반할 방법부터 찾아야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에너지 시대가 밝아올 때 아르나손은 수소경제의 첫 씨앗은 광활한 설원과 온천수 구덩이로 가득한 자신의 바이킹 조국에서 싹을 틔웠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수소교수라는 별명을 혐오할 이유를 잃어버릴 것이다.

출처:뉴스위크 Adam Pior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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