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카드위조단에 한국은 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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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14일 입국한 중국인 잉모(56) 등 2명은 3일간 서울 시내 면세점 3곳을 돌며 고급 시계 등 명품 2억9000만원어치를 구매했다. 결제는 모두 신용카드로 이뤄졌다. 이들이 43회에 걸쳐 결제를 요청한 금액은 무려 4억원. 잉 일당은 16일 서울 삼성동의 면세점에서 결제를 하던 중 카드사의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이들이 갖고 있던 신용카드는 110장. 모두 위조된 가짜였다. 잉은 경찰에서 “중국으로 물건을 사가지고 가면 그곳에서 다시 되팔리는데, 최대 10%의 커미션을 받기 위해 심부름을 한 것 뿐”이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21일 윙모(32) 등 말레이시아인 3명도 공항 면세점 등에서 위조카드로 2억4000만원을 부정 사용한 혐의로 붙잡았다.

 유흥업소와 카지노도 위조카드를 사용하는 주요 범행 장소다. 이달 초 미국에서 위조된 신용카드를 국제우편으로 배송받아 나이트클럽 등에서 유흥비 2억8000여만원을 결제한 미국 영주권자 엄모(30)씨 등 3명이 적발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위조 카드로 카지노 칩을 구입한 뒤 되파는 이른바 ‘칩깡’으로 1억여원을 챙긴 중국인 탕모(31)가 붙잡혔다.

 한국이 외국인 신용카드 위조 범죄단의 타깃이 되고 있다. 경찰과 금융당국은 위·변조가 쉬운 마그네틱 카드의 사용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정용희 팀장은 “마그네틱 카드는 위조 장치에 긁으면 5초 만에 복제가 끝날 정도로 위·변조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반면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가 들어간 IC칩 카드는 카드 내에서 정보의 저장과 처리가 가능해 위·변조의 위험이 작다.

 금융감독원은 2014년 말까지 전 가맹점에 IC카드 결제단말기를 갖춰 2015년부터 마그네틱 카드의 사용을 제한할 계획이다. 하지만 단말기 설치 비용 등의 문제로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IC카드 전환은 세계적인 추세다. 전 세계 가맹점의 76%가 IC 단말기를 갖췄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시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신용카드의 80% 이상은 이미 IC카드로 전환됐지만 가맹점의 32%밖에 IC 단말기를 갖추고 있지 않다.

많은 가맹점은 여전히 본인 확인 절차가 필요 없는 마그네틱 카드 결제를 선호한다. 단말기에 카드를 꽂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의 IC카드는 결제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김해철 여신금융협회 선임조사역은 “사고가 나도 본인의 귀책사유만 없으면 카드사가 손해액을 부담하기 때문에 소비자나 가맹점 모두 마그네틱 결제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신용카드 복제사고로 인한 국내 카드사의 피해금액은 101억원에 달했다.

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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