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STX의 위기 … 대기업 구조조정 시금석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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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자산 기준으로 재계 13위인 STX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알려진 강덕수 회장은 STX건설에 대해 기업회생(법정관리) 신청을 하고, 그룹의 모든 지분을 채권단에 넘기고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외환위기 직후 옛 쌍용중공업을 인수하면서 STX그룹을 일군 강 회장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조선·해양·건설 쪽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는 조선-해운으로 수직계열화된 STX의 재무 상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해운 물동량이 줄고 유럽 선사들이 선박 발주를 꺼리면서 그룹이 뿌리째 흔들렸다.

 STX그룹의 비극은 단발 사건이 아닐 수 있다. 건설·조선·해운·화학 등 업황이 악화된 대기업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대기업들의 실상은 1분기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삼성전자·현대차·LG전자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대기업들은 매출이 정체되고 영업이익이 곤두박질쳤다. 앞으로 엔 약세의 쓰나미가 본격적으로 밀려오면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은 더 나빠질 수 있다. 해외건설의 ‘어닝 쇼크’를 부른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처럼 잠복된 지뢰들도 곳곳에 널려 있다.

 경제환경이 당분간 호전되기 어려운 만큼 이제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대비해야 할 때다. 그동안 남의 돈으로 덩치를 키워온 M&A 방식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다. “이번만 넘기고 보자”는 안이한 생각도 위기를 더 키우기 마련이다. 대기업들 스스로 무리한 몸집 불리기를 자제하고 사업구조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금융기관들은 적기(適期) 시정조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위기 징후를 보이는 기업에는 선제적으로 옥석 가리기에 들어가야 한다. 살릴 기업은 살리고, 정리 대상은 신속하게 매각해야 한다. 비록 금융기관들의 대손충당금 부담은 커지겠지만, 더 큰 재앙은 미연에 막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현재 어려움을 겪는 건설·조선 등은 우리의 주력 산업이자 고용 창출과 전후방 효과가 큰 업종들이다. 함부로 정리할 대상은 아니다. 외환위기 때처럼 자칫 헐값 해외매각이나 대량 실업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STX그룹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향후 대기업 구조조정의 새로운 시금석이 될 것이다. 다행히 강 회장은 주력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쪽으로 현명한 선택을 했다. 채권단도 나머지 계열사들을 매각하거나 일단 끌어안은 뒤 주력인 STX해양조선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STX그룹이 위기에 빠지면서 자금시장은 경색되고, 중견·중소기업들의 돈줄도 경색되는 조짐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STX그룹의 구조조정이 탄력을 받으면 위기에서 벗어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채권 금융기관들은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STX 계열사에는 신속한 자금 지원을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경영권 포기나 대주주 지분 감자, 과감한 인력 축소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주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