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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崇禮[숭례]

중앙일보

입력

남대문 복원을 위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다음 달이면 현판에 덮인 가림막을 걷어내고 ‘서울의 정문’으로서 위용을 다시 드러낼 터다. 남대문의 이름은 ‘숭례(崇禮)’다.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틀을 닦았던 정도전이 명명하고, 세종대왕의 맏형 양녕대군이 현판 글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2008년 화재 속에서도 현판은 소실되지 않아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니 그마나 다행이다.

숭례는 『중용(中庸)』에 뿌리를 둔 말이다. 앞뒤 글은 이렇다. “군자는 높고 밝음에 최선을 다하되 중용의 길을 걸어가며(極高明而道中庸), 옛것을 보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줄 알며(溫故而知新), 후덕한 내면을 돈독히 함으로써 예를 숭상한다(敦厚而崇禮). 그러한 고로 윗자리에 있어도 아랫사람에게 교만하지 아니하고(居上不驕), 아랫자리에 처하여도 분위기를 흐리지 아니한다(爲下不倍).”(『중용』 27장)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의 이름도 『중용』에서 따왔다. 『중용』 30장은 “만물은 함께 자라지만 서로 해치지 않고(萬物竝育而不相害), 여러 도는 함께 존재하지만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道竝行而不相悖). 작은 덕은 시냇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小德川流), 큰 덕은 만물의 두터운 변화를 이끈다(大德敦化). 이것이야말로 천지가 위대한 까닭이다”라고 했다.

정도전은 서울 성곽 4대 문을 건설하면서 이름에 유교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넣고자 했다. 그리하여 동대문은 ‘興仁之門(흥인지문)’이라고 했고, 서대문은 ‘敦義門(돈의문)’, 남대문은 ‘崇禮門(숭례문)’으로 이름을 붙였다. 북쪽의 관문은 원래 ‘弘智門(홍지문)’으로 이름 짓고자 했으나 풍수를 이유로 후대에 ‘肅靖門(숙정문)’으로 명명됐다. 대신 ‘弘智門’이라는 이름은 숙종 41년(1715년), 오늘날 상명여대 앞에 건립된 대문에 돌아갔다. 정도전은 또 서울 중앙에 종(鐘) 보호를 위해 지은 누각을 ‘普信閣(보신각)’이라 했으니, 이로써 ‘인·의·예·지·신’이라는 ‘5행(五行)’의 덕목을 완성하고자 했다. 이렇듯 서울 곳곳에는 동양철학이 녹아 있다. 우리 선조들에게 고전은 바로 삶이었던 것이다.

남대문 복원을 계기로 ‘敦厚崇禮(돈후숭례)’의 큰 덕이 이 땅에 널리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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