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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의 씨앗’ 뿌릴 사회적 기업가 키우는 큰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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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호 28면

빌 드래이튼 아쇼카재단 설립자 겸 CEO는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기업가정신’이라는 용어를 처음 창안하고 정립했다. [사진 아쇼카재단]

‘창조경제’를 둘러싼 아이디어 경쟁이 뜨겁다. 특히 창업이 화두이다 보니 관계 기관 담당자들과 마주 앉는 일이 잦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D.캠프(D.CAMP) 같은 컨셉트의 시설을 구축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고 조직은 어떻게 꾸려야 하느냐”라는 것이다. D.캠프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지난달 말 연 창업 생태계 허브다.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⑥ ‘아쇼카 재단’ 설립자 겸 CEO 빌 드레이튼

그럴 때마다 나는 “저… 돈이나 조직보다 사람부터 먼저 고민해 보시지요.”

실은 꽤 난감한 얘기다. 말인즉 ‘체인지 메이커(change maker, 변화 창조자)’로서의 역량이 뛰어난 이를 찾으십사 하는 건데, 이는 이력서만으로 가늠하기 힘들다. 정량화가 어려운 만큼 사람을 강조하는 자체가 뻔한 공염불로 여겨질 수 있다. 한데 여기 “시스템을 바꾸려면 오직 사람에 투자하라”고 외쳐온 이가 있다. 세계 최대의 사회적 기업가 지원기구인 ‘아쇼카(Ashoka) 재단’ 설립자 겸 CEO 빌 드레이튼(Bill Drayton·70)이다.

시스템을 바꾸려면 오직 사람에 투자를
드레이튼은 ‘사회적 기업의 구루’ ‘사회적 기업가정신의 아버지’로 불린다. 세계 최초의 사회적 기업가이자 그 용어와 정의를 창안한 인물이다. 최근 그는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와 벤저민 프랭클린 창의재단이 선정한 ‘올해의 창의성 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이 뽑은 ‘미국 최고의 지도자 2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궁극적 목표가 “세상 모든 이를 체인지 메이커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세계를 돌며 그 씨앗 역할을 할 사회적 기업가를 발굴하고 투자한다. 이름하여 ‘아쇼카 펠로(fellow)’다.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설립자도 아쇼카 펠로다. 저렴한 태양에너지 개발로 전기 없이 살던 100만 명에게 빛을 선사한 브라질 사회적기업 ‘솔라 홈 시스템’의 파비오 로사 창업자 또한 아쇼카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현재 아쇼카는 연간 3500만 달러에 이르는 운영자금과 세계 71개국, 3000여 명의 펠로를 둔 비영리 재단이다. 드레이튼은 “10대 초반의 ‘체인지 메이킹’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신문 만들기에 빠졌다. 용돈을 모아 등사기를 구입한 뒤 학생기자단을 조직해 32~50개 면의 신문을 제작했다. 광고를 따고 배급도 도맡았다. 이를 통해 남다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얼마 전 ‘창의성 상’ 수상 기념강연에서 “아쇼카 펠로의 80%가 나처럼 10대 시절 체인지 메이킹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절실한 필요에 공감(empathy)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체인지 메이커의 필수 자질이며 이는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연습하고 발달시켜야 할 능력이라는 것이다.

하버드대 진학 뒤에도 드레이튼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즉시 실행하되, 혼자가 아닌 팀워크를 지향하고, 사회의 각 세력과 파트너십을 형성해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는 훈련을 계속했다. 대표적 활동이 ‘아쇼카 테이블’이라는 조직을 결성한 것이다. 학생들이 정부 및 기업의 주요 인사와 만나 사회 이슈를 토론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게 했다. 아쇼카는 기원전 3세기 인도 부흥기를 이끌었던 황제의 이름이다. 이는 훗날 아쇼카재단의 모태가 된다.

1963년 여름방학 때는 독일 체류 중 차를 몰고 인도로 달려가기도 했다. 훗날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사상가이자 빈민운동가 비노바 바베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공공재정학·역사학을 전공하고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에도 사회 혁신에 대한 열망은 줄지 않았다. 이후 10여 년간 맥킨지 뉴욕사무소와 미국 환경보호청에서 일하며 공공정책 관련 전문성을 키웠다. 1981년, 마침내 오래 꿈꿔왔던 아쇼카재단을 설립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은 기존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다. 이들을 사회적 기업가라 한다면, 나는 그들을 돕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다.” 몇몇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재단 설립 취지다.

생선? 낚시법? 수산업 자체를 혁신하라
81년에 최초의 아쇼카 펠로를 선정했다. 하지만 초기 재원 5만 달러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직장생활과 재단 운영을 병행하느라 허덕이던 84년, 맥아더 재단의 펠로로 선정됐다. 5년간 50만 달러를 지원받게 되자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뒀다. 세계 각지를 돌며 본격적으로 펠로 발굴에 나섰다. 85년에 36명의 펠로를 선정했다. 직접 해당 지역을 찾아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현장 조사를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쇼카만의 펠로 선정 기준과 엄격한 심사 규정을 정립했다.

아쇼카 펠로가 되려면 총 5단계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체 지원자의 약 87%가 탈락한다. 단계별로 각기 다른 심사위원들과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이틀에 걸친 인터뷰를 해야 한다. 심사위원들은 지원자의 창조성과 도덕성, 기업가적 자질을 평가한다. 아울러 그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새로운지, 사회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지 따진다. 선발된 펠로에게는 3년간 약 5만 달러의 생활지원금, 전문 분야 컨설팅,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전방위적 지원이 이어진다. 맥킨지부터 40여 개의 국제적 로펌까지, 수많은 전략적 제휴사들이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펠로 간의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아이디어를 세계로 확장하고 국제적 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덕분에 아쇼카 펠로의 51%가 국가 차원의 정책을 바꾸고, 72%가 영리·비영리의 벽을 허물고, 75%가 해당 분야의 시장 패턴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드레이튼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사회적 기업가는 생선을 주거나 낚시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수산업 자체를 혁신하는 사람이다.” 그리 본다면 우리나라의 창조경제를 이끌 사람도 무엇보다 사회적 기업가정신의 소유자가 돼야 하지 않을까. 아쇼카 펠로의 엄정하면서 깊이 있는 심사 기준을 벤치마킹해 우리 나름의 ‘창조경제 펠로’를 선정하고 중책을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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