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흑백분규|「러스크」양 결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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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서부의 어떤 대학교회 안에서 역사가 이루어졌다. 당밀보다 감미로운 「웨딩·마치」의 선율 앞에 이족 결혼전선의 또 하나의 「마지노」선이 봄눈 녹듯이 무너졌다. 여름에 그렇게도 법석을 떨던 흑·백 분규의 핏자국에선 아직 비린내가 뭉실 하는데 검둥이 청년「스미드」는 미국대통령 계승권 서열 네 번째의 국무장관의 고명딸을 처로 맞이한 것이다.
자유결혼만능의 물결이 너울거리는 이 나라 매파 역에는 반드시 사람이어야 하는 법이 없는 듯, 「거이깁슨·스미드」(22) 군의 애마 「너배이조」가 「스미드」군과 「마거리트·엘리자베드·러스크」(18) 양의 중매 장이 역에 수훈 갑을 세웠다. 50명의 극히 엄선된 하객 (오히려 경비에 나선 경찰선수가 더 많았다) 의 축복 속에 단 10분만 에 막을 내린 결혼식이 끝나자 마자 신랑이 맨 먼저 애마의 뺨에 「키스」했다는 얘기고 보면 말에 향한 그의 애착을 짚어 볼 수 있겠다.
어릴 때부터 말에 침식을 잃다시피 해온 이 청년은 어느 날 하오 3시 대자연의 위력에 압도되면서 「록·크리크」공원으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 타러 갔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신나게 말채찍을 내리치는 순간 「스미드」군은 하마터면 낙마할 뻔했다. 반대쪽에서 전세 낸 말을 타고 이쪽으로 달려오던 14세의 미모의 백인 소녀에게 한눈을 팔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사춘기의 문턱에 한발을 갓 내디딘 「마거리트」양과의 사랑의 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학우들과의 토론회에서 언제나 소수의견을 내세웠다해서 「위대한 반항아」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에겐 「마거리트」가 첫 백인애인은 아니었다. 「스미드」와 교제하던 몇몇 백인소녀들이 있었으나 모두 친구로서의 선에 동결되고 말았었다고. 「조지타운」대학교의 예비역장교 군사훈련 반에서 성적이 여섯째 안에든 그는 육군 「헬리콥터」학교에 입학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현재 미 항공우주국 (NASA) 연구소의 기사로 일하고 있는데 그의 근무처가 있는 근처의「스탠퍼드」에는 이제는 신부가 된 「마거리트」가 대학2년 생으로서 공부와 인생설계에 손이 바쁘다. 천성이 활달한 신부는 일국을 주름잡는 국무장관의 외동딸이면서도 소제부에서 「베이비·시팅」(아이보기) 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잔일로 학비의 일부를 벌어온 착실형. 작년가을 이 두 사람은 백년해로를 다짐하면서 조촐한 약혼식을 올렸다. 약혼반지조차 없는 것을 보면 약혼식이 얼마나 검소했는지 짐작이 간다. 「스미드」는 「마거리트」로부터 국무성집무 관에서 장인 될「러스크」장관을 소개받았을 뿐 자기를 사위로 삼아달라고 호소한번 한 일 없고 양가의 별다른 반대 없이 작년 겨울 결혼하기로 마지막 결심을 했다는 것. 부모들에겐 그저 통고정도로 그쳤다한다. 「러스크」장관이 지난주 초 중요집회에서의 연설이란 명분을 띠고 결혼장소로 밀행 (부인은 3주전 이곳에 잠입) 해야했음을 볼 때 세론을 얼마나 근심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쓸쓸히 미소 띤 「러스크」장관이 「존슨」행정부에 누를 끼친다면 사임하겠다고 한 것도 그의 고민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세기적이라 할 이 흑·백 결혼처럼 말많은 2성의 결합도 드물게다. 잘했다는 찬사가 있는가하면 딸을 검둥이에게 줄 바에야 숫제 밟아 죽이겠다는 극단파도 있었다. 「러스크」장관의 형제조차 한 쌍의 원앙에 축복하기를 외면했으나 1948년까지만 해도 흑·백 신혼을 처벌했던 「캘리포니아」주 법 시대는 지났다. 얼마후면 인종차별이 거의 감지되지 않는 월남상공의 「헬리콥터」안에서「스미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나는 승리했다』고.

<신상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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