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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김성태-서울대 음대학장, 김기정-음악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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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을은 음악의 계절. 무더운 여름, 땀흘려가며 쌓은 실력들이 무대에 쏟아져 나온다. 올 가을은 특히 풍성한 듯 무대는 쇄도하는 예약으로 비명을 올리고 있다. 초조와 흥분의 무대를 몇 걸음 물러서서 보려고 젊은 비평가 김기정씨는 작곡가 김성태씨를 서울음대 학장실로 찾았다.
『연주분야가 활발한데 비해 작곡이 저조하다는 말씀인데 하는 수 없다고 봐요.』 연주가는 어느 정도 기술이 숙달되면 살아갈 수 있지만 작곡만으로 살아갈 수는 도저히 없는 우리 실정을 말한다. 김학장은 이어 『창작으로서의 연주와 모방으로서의 연주를 나누어 생각해야 겠지요.』『어떻게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될 수 없겠습니까.』 성급한 김기정씨의 질문.
『우선 작곡가의 절대수가 모자라요. 「하이든」 「모차르트」처럼 귀족사회의 후원을 기대할 수는 없고, 예산에 허덕이는 국가의 후원도 어려운 일이요.』 방송국 같은데서 작곡을 위촉하면 좋겠다고 한다.

<주체 살려 연구를>
『선생님은 예술이 성립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강조하시는데 객관적인 여건도 물론 중요하지만 음악가 자신의 노력과 연구에 보다 근본적인 관건이 있지 않을까요.』
『결국 음악가의 주체적인 희생정신이랄까 감투정신에 궁극적인 열쇠가 있다는 견해인데 좋은 말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나 사회적 여건과 함께 종합해서 생각지 않으면 시대감각과 역행하는 비현실적인 방안으로 떨어져 버려요.』
『제가하려고 하는 비평을 예로 볼 때 우선 자세부터 제대로 돼있지 않아요. 기준이 서있지 않습니다.』 글 좀 알고 음악 조금 알고 신문사와 통하는 길만 있으면 인상 비평 몇 자 끄적일 수 있는데, 이것이 현재 음악비평의 전부라고 한다. 『이 연구부재의 상태가 과연 여건 때문 만이겠습니까?』 『역시 여건이 문제지요. 비평만으로 주업이 될 수 있다면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거요.』비평가가 작곡가와 연주가에 맞먹는 수준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두 사람이 함께 강조하면서도 문제의 소재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강조한다. 『선생님 말씀 대로면 아무 것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쎄 너무 전투적으로만 생각지 말라니까, 하하…. 조급하지 말고 먼 눈으로 봐야 해요. 예술이라는 게 일조일석에 결단만으로 되는 게 아니지요. 해방 후 짧은 기간의 성장도 좀 생각해야지. 나는 우리 음악의 장래를 밝게 내다보고 있어요.』
김기정씨는 화살을 다시 연주분야로 돌린다.
『역량 있는 연주가들이 개인 지도에 거의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있는데 음악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벌기 위해 음악 하는 것 같은 사람마저 있어요.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후진교육이 절대로 중요해요. 나만해도 세계적으로 일가를 이루어 보겠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요.』 김학장은 질문을 슬쩍 피하며 한동일, 김영욱, 정명화 같은 뛰어난 연주가를 배출한 것은 크나큰 성과라고 말머리를 돌린다. 『몇몇 우수한 연주가의 출현을 가지고 우리 음악계의 향상이라고 볼 수 있을는지요?』 『그것만으로 우리 음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면 억지겠지요. 한나라의 음악수준은 그 실내악 수준에서 단적으로 나타나요.』 『그런데 저로서 항상 의심스럽게 느껴지는 건 소위 천재 소년 소녀라는 것 말입니다. 곡예를 강제로 가르치는 것 같아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부모의 허영심이 결과적으로 「플러스」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술값을 벌게 하려고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그만 「베토벤」이 돼버린 게 아니오.』음악의 경우 조기교육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교향악단에서 가능하면 우리의 작곡가의 새 곡들을 많이 연주해 줬으면 좋겠어요.』

<신인 등용 길 넓게>
『가난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우리 교향악단들이 새 곡을 작곡가에게 위촉하는 건 바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작곡이 된 곡은 많이 연주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오히려 연주할만한 우리의 곡이 없었다는 것이 정직한 얘기며 교향악단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건 무리라고 김학장은 말한다.
『예술가들끼리니까 새 곡의 위촉도 서로 양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작곡가들은 돈도 필요하겠지만 작품을 발표하고 싶은 욕망이 훨씬 더 절실할 겁니다. 특히 신인의 경우에는요.』『그렇게 돼야겠지요. 되도록 신인에게 길을 열어 줘야지요.』
「오페라」 「마탄의 사수」에서 신인을 발탁한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다고 두 사람은 흐뭇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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