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10여일전 "철저 수사"와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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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측이 대북 4천억 비밀지원 의혹과 관련, 여야의 초당적.고차원적 합의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2일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의 기자간담회에서다.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한 엄정한 사법처리 대신 일종의 '정치적 고려' 쪽으로 선회한 셈이다.

文내정자는 이날 대북 비밀지원 의혹의 해법을 실체적 진실규명과 책임추궁 두 가지로 분리해 접근했다.

실체적 진실규명 부분은 지난달 30일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송금 시인으로 의혹의 본질이 밝혀졌다는 게 文내정자의 주장이다. 당시 金대통령은 "현대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 경제협력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이라고 말하며 대북 송금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나머지 부분, 즉 관련자 처리 등의 책임규명 문제에 대해선 국익을 이유로 정치적 해결을 역설했다. 북핵(北核)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등을 자극할 수 있어 "막말로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文내정자는 검찰 수사나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특검제 실시 등에 대해선 "실익(實益)이 없다"며 부정적 견해를 내놓았다. 대신 盧당선자와 각 당 대표, 원내총무 등이 협의를 하고, 통일.외교 문제를 푸는 여야 협의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같은 文내정자의 발언은 "검찰이 특검받을 각오로 (철저하게 수사)해달라"고 했던 盧당선자 입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날 文내정자의 발언이 盧당선자의 뜻과 관계없이 나온 것으로 보긴 어렵다.

그는 "盧당선자에게는 이제(기자간담회 후) 보고할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정말 상의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인도 부인도 않겠다"고 했다. 교감 끝에 나온 발언임을 시사한 것이다.

盧당선자 측이 갑자기 뒤로 물러선 데는 복합적인 역학관계가 반영된 듯하다. 사실 盧당선자는 이 문제를 둘러싼 DJ와의 관계와 여론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해 왔다.

그간의 발언이 주로 여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날 文내정자의 발언은 DJ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DJ와 盧당선자가 송금문제는 이 정도로 처리하기로 협의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반면 내부 결속을 위해서라도 대북 비밀지원 의혹을 놓고 강력한 대여(對與) 공세에 나설 수밖에 없는 야권의 손을 빌려 DJ와 연계된 의혹사건들을 정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실제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야당이 국정조사를 끝까지 요구하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게 盧당선자 측 핵심부의 기류다.

盧당선자 측 일각에선 국조 실시 여부와 무관하게 DJ의 대국민 사과 등을 정치적 해법의 최종 수순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강민석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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