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상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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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살다보면 풍습이란 빚어지는 것. 한번 틀이 잡힌 인습은 쉽사리 스러지지 않는다. 원색 감이 짙은 생활, 어제를 그대로 지키려는 마음이 아니라 벗어나려 해도 못 벗어나는 생활이 있고, 어제를 악착같이 지키려는 허황 된 몸부림도 있다.
○…그들의「집」엔 번지가 없었다. 숱한 외항선이 들고 나는 부산항- 제4부두 북쪽 대한석탄공사 부산지사 앞 바다엔 오늘도 한국판「집시」1백 51가구(901명)가「바지」(부선)에서 살림을 하고 있다.
노래도 꿈도 전란이 앗아간 실향사민들
6·25가 가져다준 이 생활은 포성이 멎고 몇 차례 세상이 바뀌고『살림이 나아지고 있다』고 떠들어 대고있는 오늘도 뱃바닥 한 장을 깔고 바다에서 산다.
○…「화기엄금」이라는 세관의 푯말이 유난히 커 보이는 부두에서 1백 미터쯤 떨어진 바다 위에 부선 가족들은 수상 촌을 이루고 있다.
김상보(34)씨는 여섯 식구. 아내 최씨(34) 아들 민구(9) 민철(7) 민호(2) 그리고 딸 순자(4)양이다.
김씨네는 부선 위에 작은 천막을 치고 낮을 지낸다. 저녁이 되면 궤짝같이 된 부선 밑창으로 들어간다. 비가 오는 날은 하루동안 선창에서 지샌다. 하루도 좋고 이틀도 좋고.
『밥은 어떻게 지으십니까』-김씨는 『석유화덕을 쓰지요』하면서 부두 벽에 써 붙인「화기엄금」을 한번 흘겨보았다. 화덕은 소금기에 새빨갛게 녹이 슬어 있었다. 김씨의 한달 수입은 7천원 남짓. 하역회사에서 나오는 부선 감시비 그리고 그 밖의 노동으로 생기는 푼돈이 전부다.
○…부산항이 전쟁경기로 북쩍 거릴 때는 부선 가족도 살만했단다. 쏟아져 들어오는 군수물자, 그밖에 물자들. 1만톤급 이상의 큰배가 부두에 직접대지 못해 날개돋친 것이 부선 이었다. 그 당시엔 부선이 없어서 못 쓸 판이었고 수입도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한낱 옛말. 돈번 사람은 육지로 옮겨갔고 지금은 대부분 주인이 따로 있고 부선 감시원 겸으로 살림을 한다.
그래도 부산항엔 지금도 2백 60여 척의 부선이 움직이고 그 중 1백 51척에선 뱃속에서 살림을 하고 있다. 제1부두와 영도 바닷가에 20여 척이 따로 떨어져있으나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2백여 척은 작업만 끝나면 약속이나 한 듯 4부둣가로 모인다.
○…김씨 집에서도 아이들은 학교에 나간다. 아침 4부두에서 학교로 간 어린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부선)을 찾아가면 간데 없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란다. 부선이 작업을 하러 나가는 때문이다. 이럴 때면 추운 겨울이라도 아이들은 집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할 수없이「부산항 부선 가족대기소」를 마련했다. 그래도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지친 어린이들은 이따금 집을 찾아 넓은 부산항을 찾아 헤맨다.
5·16후 정부는 이 마을에 주민등록을 시켰다. 번지가 없어 모두 연고지에 등록했다. 그러나 물위에 뜬 시민들은 한번도 선거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셋방 삯은 안 들지만 그런 대로 이 마을엔 따로 드는 돈이 있다. 부두에서 1백 미터 떨어진 집을 드나들려면 전마선 신세를 져야하고 왕복이 10원, 그것도 파도가 거센 날은 발이 완전히 묶인다. 한 동이에 10원하는 물은 식수전용,『세수는 사치스럽다』고 했다. 『이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겠습니까』고 묻자 『누가하고 싶어 합니꺼?』김씨의 퉁명스런 대답이 되돌아 왔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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