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사건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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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홍제동 한 여인 살인 용의자로 수감됐던 신규한씨가 구속된지 만 29일만인 어제 서울교도소에서 출감했다. 신씨에 대해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검찰은 즉각 『홍제동 살인사건수사를 백지로 돌려 원점으로부터 전면 재수사하라』고 시경에 지시했고, 그와 같은 검찰의 재수사 지시를 받은 경찰은 서대문서에 수사본부를 설치. 재수사에 나선 모양이다.
그런데 살인 혐의를 벗고 풀려 나온 신씨는 『사필귀정이다』라고 하면서 경찰에서의 자백은 심한 고문 때문에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변호인과 상의하여 고문 경찰관에 대한 고소와 국가 상대의 손해배상 청구도 할 의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부터 수사 기술상 허점 많은 증거를 기초로 했던 문제의 신씨 구속은 몇몇 의문점을 남기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상세한 수사 기술상의 문제는 일단 논외로 친다해도, 또 앞으로의 재수사가 끝내 흑백을 가리게 될 것이라 한다해도 신씨의 구속사건이 원점으로 반전된 데 대해서는 그런대로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첫째, 법원에 『아흔 아홉의 죄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사람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지 말나』는 말이 있거니와, 이번 신씨 사건은 그런 점에서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할 것이다. 물론 이번의 사건 반전은 단지 증거능력에 관한 것이므로 오늘 이 시점에선 신씨의 살인혐의가 완전 무결하게 풀렸다곤 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으나 검찰의 말대로『죄가 인정되면 사형이 집행될 것인 살인 피의자를 증거없이 기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짓밟혔던 한 시민의 인권이 검찰에 의해 정당하게 소생된 데에 신씨와 함께 그 기쁨을 같이 하는 바이다.
둘째, 신씨가 주장했다는바 고문 조작설도 시간을 두고 흑백이 가려질 것으로 아나, 만약에 그런 전시대적인 야만이 진짜로 저질러졌다 한다면 그것은 도저히 묵과될 수 없는 중대사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사소한 절도 혐의도 아닌 살인 혐의를 물리적 강제력으로 조작해 씌웠다면 참으로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국민의 생명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 역시 조속한 시일 안에 그 진상이 밝혀져, 다시는 그런 야만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돼야 할 것이다.
한편 수사기술의 근대화, 과학화 과제는 이제 그중 긴급을 요하는 과제의 하나로 등장되고 있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근자 국민들은 인간과 인권의 승리를 목이 터지도록 구가케 한 김창선씨의 생환사전으로 그지없이 마음 흐뭇한 바가 있었는데, 이 신씨 사건은 그런 감격을 밑바닥에서 뒤흔들어 놓은 감이 있다. 인간의 존엄과 인권의 존중을 그 존립의 생명으로 하는 우리사회에서 거듭 신씨 사건 같은 것이 촉발된다면 그것은 차라리 크나큰 국가적 불행이라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국은 시급히 수사기술의 근대화, 과학화를 통해 남의 인권이 자기 눈알처럼 아껴지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기에 힘써야 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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