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대표, 이시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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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왼쪽)이 24일 충주체육관에서 열린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 48㎏급에서 김다솜의 얼굴에 왼손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고 있다. 긴 팔을 활용해 아웃복싱을 한 이시영은 판정승을 거두고 국가대표가 됐다. [충주=뉴스1]

링에 올라가면 이시영(31·인천시청)은 더 이상 여배우가 아니다. 얼굴에 상처가 나거나 눈가에 멍이 드는 것보다 승리가 더 중요하다.

 24일 충주에서 열린 여자복싱 국가대표 선발전. 이시영은 48kg급 결승에서 12살이나 어린 띠동갑 김다솜(19·수원태풍체육관)을 22-20으로 누르고 대표로 뽑혔다. 강호동처럼 스포츠 스타가 연예인으로 변신하는 일은 있었지만 연예인이 뒤늦게 운동에 뛰어들어 태극마크를 단 건 이시영이 처음이다.

 복싱을 시작한 건 2010년 드라마 촬영을 위한 연기 연습 때문이었다. 지금은 연예활동보다 복싱이 더 중요하다. 경기를 마친 이시영은 “국가대표라 불리기엔 내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며 “너무 영광스럽다. 앞으로 8~9개월은 복싱에 전념해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는 거다. 그를 지도하는 김원찬 인천시청 감독에게 “경기를 보니까 이시영이 장난 삼아 하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시영이 그런 이야기 들으면 기분 나빠할 거다. 끝까지 갈 거다”라고 말했다. 그런 의문 자체를 실례라고 느낄 정도로 이시영의 태도는 진지하다.

 이시영의 연예 매니지먼트사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시영 선수는…’이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덕균(제이와이드컴퍼니) 대표는 “선수라는 표현은 좀 그렇다”고 난감해했다. 여배우의 이미지가 훼손될까 봐 걱정이다. ‘이시영이 손연재나 김연아처럼 스포츠 스타로 대성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시영은 최근 스포츠 브랜드 르까프의 광고 모델 계약을 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나이도 많고, 복싱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또 김연아는 피겨 세계챔피언이다. 손연재도 올림픽에서 메달권에 있다. 이시영이 복싱을 할 수 있는 기간은 너무 짧다”며 운동에 집중하는 걸 걱정했다.

 하지만 이시영의 뜻을 꺾지는 못할 것 같다. 이시영은 3월 초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 무릎도 좋지 않았지만 착실한 재활을 거쳐 대회에 출전했다.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 거처도 훈련장과 가까운 인천시 구월동으로 옮겼다. 지난달 20일부터는 오전·오후로 이어지는 팀 훈련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키 1m69㎝의 장신이지만 48㎏급 출전을 위해 경기 전 사흘 동안 1.5㎏을 감량했다.

 기량도 쑥쑥 향상되고 있다. 이승배 복싱 국가대표 감독은 “지난해 1차 선발전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 특히 왼손 스트레이트에서 오른쪽 훅으로 이어지는 동작이 부드럽다”고 칭찬했다.

 이시영은 오는 8월 대통령배 대회에 출전한다. 10~11월 일본에서 열릴 예정인 한·일 교류전은 그의 국가대표 데뷔전이 될 수도 있다. 아시안게임에는 여자 48㎏급이 없기 때문에 올해 연말 열리는 대표 선발전 때는 51㎏급으로 체급을 올려야 한다.

 51㎏급에는 더 무서운 경쟁자가 많다. 이시영의 전적은 13승1패다. 지난해 12월 이시영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겼던 박초롱(19·한국체대)은 이번 대회 체급을 올려 출전했지만 51㎏에서 남은진(23·서귀포시청)에게 판정패했다. 이시영은 “상대가 강해지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투지를 보인다. 이시영이 정말로 아시안게임 대표가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김원찬 인천시청 감독은 “알 수 없다”고 했다. 확실한 건 이시영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충주=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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