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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문단 소설 - 이호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신동아」8월호가 「단편소설10인 집」을 꾸며서 오래간만에 중견들을 한자리에 끌어내고 있다. 이「10인 집」을 훑어보고 편집자가 요구한 장수한 도안에서 화제하나를 찾아내기로 하였다.
황순원·서기원·한말숙·최인훈 등이 각각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교적 직접적으로 정치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점은 이달 작단에서 주목되는 일이다. 그것은 작가들이 제각기 처한 분수에서, 우리가 처해있는 정치적 상황을, 바닥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서 앓고 있다는 증거일 터이다.
문제는 상황을 앓는 그 아픔의 질이다. 작가마다 다른 그 앓음과 아픔의 질이 어쩔 수없이 소설의 깊이까지를 결정짓고 있는 듯하다.
서기원의 착상은 정보정치의 희화적인 한 단면을 다루고있어 흠이 있고 의미 있는 것이지만 단편으로 다루기에는 거듭거듭 아까운 생각이다.
한말숙은 사실은 지난 선거후의 대학가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고 문장 하나 하나에 매우 힘도 들여져서 비교적 작품자체로서는 성공작을 내고있으면서 구태여 이미 고시적 일이 되어버린 자유당의 3·15부정선거와 결부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이점은 독자들로 하여금 치명적으로 괴면하게 쑥스럽게 만들고 있다.
분명히 오늘의 문제에 정면으로 대어들고 있으면서 왜 7년 전으로 내빼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이런 소재를 이런「스타일」로 다룰 때는 금일 적인 것과 철저하게 밀착해있어야 할 것이다. 주제 면에서도 「우울한 청춘」과 결부시키고 있는 점, 이 작가가 이 작품을 다루고 있는 한에서의 상황을 앓는 아픔의 분수도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비해서 최인훈의 「총감의 소리」는 처음부터 떳떳하고 당당하고 고압적이다. 그리고 작가의 노한 안광도 우리상황의 근원적인 데가 닿아있다. 지난 선거를 전후한 우리상황의 모든 아픔을 작가의 아픔으로 철저하게 빨아들여, 저어 느높은 자리에서 군림하듯이 내 쏟고 있다.
정치의 발을 비롯해서 모든 세속은 그의 앞에 공손히 꿇어 엎뎌서 귀를 기울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는 군자인가, 설교사인가, 아니다. 그가 떳떳하고 당당하고 고압적일 수 있는 것은 그가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서 세속을 군림하듯이 내려다보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작가의 성실한 안광으로써 이 바닥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앓고 난 연후의 그것인 것이다.
결론을 얘기하자. 현실과 작가와의 조응관계는 에누리가 없고 속일 수가 없다. 작가가 그를 둘러싼 상황을 어느 정도로 깊게 절실하게 앓고 있는가 하는 그 분수와 나타난 작품과는 어쩔 수 없이 일체를 이룬다. 새삼스럽게 운위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소리지만 당연한 소리를 다시 한번 당연하게 하고 싶은 소리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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