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게 해달라" 현대차 노조에 읍소한 협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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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조의 주말 특근 거부가 7주째 계속되고 있다. 토요일인 20일 울산시 북구 연암동 한 협력업체의 생산라인이 멈춰 서 있다. [울산=송봉근 기자]

“여러분들은 대기업 사원들이니 주말수당이 없어도 버틸 수 있겠지만 협력업체는 사정이 다릅니다. 여러분에겐 노사분쟁이지만 우리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주말 조업을 재개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도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지난 18일 오전 10시 울산시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공장. 양복을 차려 입은 신사 5명이 굳은 표정으로 노동조합 사무실로 들어섰다. 현대자동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 대표단이었다.

이영섭(72) 회장은 문용문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에게 “주말조업 중단 여파로 협력업체들의 매출이 15~20% 줄어들었다”며 “살려달라”고 하소연했다. 구구절절 사연을 적은 호소문도 배포했다. 협력업체 대표단은 현대차 사측에도 똑같은 호소를 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컨베이어 벨트는 지난 주말에도 멈춰섰다.

 현대차가 쉬면 3800개를 헤아리는 협력업체도 연쇄적으로 공장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지난달 9일 이후 7주 동안 계속됐고 현재로선 쉽게 해결될 기미가 없다. 울산 북구 연암동의 덕양산업 공장은 쏘나타와 아반떼 등 현대차 주력차종의 내장재를 만들어내느라 540명의 근로자들이 주말도 잊고 일하던 곳이지만 토요일인 20일엔 적막만이 텅 빈 공장을 채우고 있었다. 생산한 부품을 싣고 현대차 공장으로 떠나는 화물차 행렬도 끊긴 가운데 환경미화원만 빈 공장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었다.

 협력업체들은 지난달 2일까지는 주말근무를 했었다. 하지만 현대차가 지난달 4일 밤샘근무 폐지 등 주간연속2교대제로 근무시스템을 바꾼 뒤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평일뿐 아니라 주말근무 형태가 변경됐지만 주말특근수당을 놓고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노조는 곧바로 주말근무 거부에 들어갔다. 노조는 근무형태 변경 이전에 받던 주말근무수당(14시간분)을 그대로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는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수당도 깎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타격은 곧바로 협력업체의 몫으로 돌아갔다. 주말근무 중단으로 인해 7주 동안 4만8000대의 생산차질이 빚어졌다는 게 현대자동차 사측의 집계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9500억원이 넘는다. 문제는 이 금액의 85%(8075억원)가량의 손실을 협력업체들이 보게 된다는 점이다. 중소업체들이 대부분인 협력업체의 경우 생산량이 줄면 곧바로 근로자들의 호주머니가 얇아진다. 특히 납품상대가 현대차 한 곳인 협력업체들의 피해는 심각하다.

 협력업체의 근로자 수는 30만 명에 이른다. 덕양산업의 10년차 근로자 이모(43)씨는 “원청업체인 현대차가 쉬면 우리도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며 “주말근무를 못해 250만원가량인 월급 중 45만원 정도가 깎였다. 각종 기념일로 지출이 많은 5월이 눈앞인데 걱정이 태산이다”고 말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주말특근수당 문제는 근로조건 개선에 관해 대기업 노사가 협의해야 할 여러 항목 가운데 하나지만, 협력업체들에는 심각한 수준의 임금감소와 함께 생산 물량 감소에 따른 고용불안까지 나타나게 된다”며 “하루 속히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부품업체의 임금감소는 자동차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기업은 노사가 모두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차상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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