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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몰래카메라 몸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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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친 곱슬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번들거리는 물방울 무늬 셔츠 차림의 로렌스 리(Lawrence Lee)는 오스틴 파워를 빼닮았다. 그는 자신을 '007 제임스 본드의 배후 인물' 정도로 생각한다. 타이페이에서 임대료가 싼 지역에 위치한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그의 사무실은 렌즈 달린 넥타이, 성경책으로 위장한 카메라, 적외선 안경 같은 스파이 장비들로 가득하다. 운이 좋으면 다른 사람의 속옷을 몰래 촬영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일본어 안내서들이 가득 꽂혀 있는 그의 서재를 구경할 수도 있다.

로렌스 리의 회사인 싱가타카라 엔터프라이즈는 10년 간 주문형 스파이 장비를 이란 비밀경찰 등의 고객에게 판매하면서 이익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12월, 대만의 한 타블로이드 잡지가 전 타이페이 여성 정치인 추메이펑이 다른 사람의 남편과 밀애를 즐기는 장면이라고 주장하며 포르노급 비디오를 경품으로 배포해 추문을 일으켰다. 둘은 침대에 숨겨진 엄지 손가락 크기의 몰래 카메라에 촬영됐다.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된 이 사건 이후 로렌스의 제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대만은 몰래카메라 히스테리에 사로잡혔다.

질투에 찬 배우자, 편집증적인 직장 상사, 도처에 있는 변태 성욕자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파이 장비를 사갔는지 알 방법은 없다. 소형화 기술과 점점 저렴해지는 전자제품들은 수천 명의 대만인을 '아마추어 빅브라더'로 만들었다. 이들은 사생활 보호나 예절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몰래 직원이나 친구, 혹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비디오로 촬영한다. 소형 스파이 카메라는 일반인에게 파는 가게 주인들은 추메이펑 추문 이후 매출이 열 배나 뛰었다고 말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장난감 중 하나는 눈에 카메라가 달린 푸우 캐릭터 인형이었다.

추메이펑 스캔들(그녀는 비디오 속 여자가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후 많은 대만인들은 주위가 전자 눈동자들로 가득찼다는 섬뜩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만 여성의 40% 이상은 몰래 카메라가 무서워 공중 화장실을 쓰지 않으려 한다. 이런 여성들의 거의 전부가 배뇨를 참는 것 때문에 요로감염증에 걸렸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일부 경찰서들은 일 주일에 두 차례씩 화장실들을 조사한다. 정부는 자신들이 카메라에 찍혔다고 믿는 사람들의 전
화가 폭주하자 집과 사무실에서 몰래카메라를 제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연회를 개최했다. 타이페이의 기야컴퍼니는 무선통신 스파이카메라가 방출하는 무선파를 잡아내는 장비를 구입한 고객 수가 10만 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여성들의 개인 보호용으로 팔린 30달러짜리 이 장비는 호각, 화장용 거울, 공포 총기 등에 장착된다.

라이언 류(Lion Liu)의 사업도 호황이다. 라이언은 부인과 의사·병원·백화점·경찰 등의 고객에게 전자장비 탐지기를 한 달에 300여개를 판다. 그는 로렌스의 싱가타카라 엔터프라이즈와 경쟁 관계에 있다. 로렌스는 라이언에게 지지않기 위해 근무 시간을 늘리고 경찰과 관계를 쌓았다. 또 공개적으로 라이언의 회사의 기술 부족에 조소를 보내고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하려고 애를 써왔다.

그의 강력한 설득 작전이 먹혀들어 여성 의원들은 의회에서 카메라들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로렌스가 이 일을 맡았다. 그는 빙글빙글 도는 지시계와 깜빡거리는 LCD 해독기가 든 금속 케이스를 끌고 건물 구석구석과 벽틈,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대형 안테나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이어진 기자회견에 대만 의회의장과 함께 나타난 로렌스는 의회 건물이 여성에게 안전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 때가 일을 시작한 후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바쁠 수밖에 없다. 감시 카메라 수요는 도처에서 증가하고 있다. 경찰은 이를 이용해 우범 지대를 살핀다. 기업주들은 직원들을 감시한다. 중국 영자신문 차이나 데일리에 따르면 광동성에서 스파이 카메라는 소비자의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이곳에는 스파이 카메라를 이용해 자신의 배우자를 추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좀도둑질을 가려내려는 가게 주인들도 있다. 일본의 한 포르노사진 웹 사이트에서 타이페이 지하철에 탄 여성 승객들의 사진들이 발견된 뒤, 한 타이페이 시의원은 서류가방으로 위장한 카메라를 갖춘 일본 범죄자들에게 대중 교통 시설이 침투당했다고 발표해 국민들의 편집증을 증폭시켰다.

지난 주에는 경찰에게서 '큰 발의 변태성욕자'라는 별명을 얻은 한 남성이 카메라가 장착된 운동화를 여성들의 치마 밑에 들이대다가 붙잡혔다. 보안 전문가 라이언은 "우리에게 프라이버시는 있는가?"라고 물은 뒤 "없다.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는 빛이 없는 곳"이라고 스스로 대답했다. 그러나 적외선 몰래 카메라도 있지 않은가.

MARK MITCHELL TAIPEI (TIME) / 이인규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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