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절구와 질병과 돌팔이 서산 울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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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섬 아낙네의 바느질 솜씨는 서투르지만 절구 찧는 솜씨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섬 아낙네는 나면서부터 그 솜씨를 지니고 나왔다. 섬사람의 유산은 바다와 절구. 3가구뿐인 울미도 선 절구가 유일한 식품 가공기. 보리도 찧고 메주도 찧고, 그리고 모든 것이 절구를 통해 나온다. 이래서 절구는 섬의 문화를 낳은 것….
절구는 먹이만 찧는 게 아니다. 풀을 찧어 약도 만들어준다. 섬에는 병이 많지만 약이 없다.
배가 아프면 익모초를 절구에 짓이겨 달여 먹는다. 허리가 쑤시거나 머리가 아프면 양귀비를 고아 먹는다. 양귀비는 만병통치의 영약. 신농씨(신농씨)이후 이 원시적인 치료법이 연면히 이어져온 것이다.
이름에 「가운」을 입은 돌팔이 양의사의 피해가 크다. 거아도의 경우 주민 4백7명 가운데 2백50명이 각가지 환자다. 나머지 사람들은 완전 건강한 것이 아니다. 의사의 진단을 받지 않았으니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 병중의 으뜸은 피부병이다.
2백50명중 50%나 된다. 젖먹이 어린이들의 머리까지 온통 부스럼. 칠순 할아버지는 발에서 허벅다리까지 진물 나는 부스럼으로 덮여있다. 그 다음은 위장병 결핵 등의 순서. 이들은 거의 「초약」이란 이름으로 구전되는 치료법으로 병을 극복한다지만 잘 되질 않는다. 거아도에 사는 지장호(18)군은 8년 전 엉덩이에 부스럼이 났다. 초약을 해 봤으나 낫지 않았다. 돌팔이 의사에게 보였더니 수술을 했다. 그 수술자리가 또 곪아 다시 수술했다.
마침내 심부가 곪아 세 번 수술했는데 결과는 바른쪽 다리가 왼쪽보다 세치나 줄어 절름발이가 됐다. 육군병원 군의관들의 진단으로는 수술 후 근육을 잘못 봉합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 재수술로 회복될 희망이 있다고 보았다. 멀쩡한 청년이 병신이 되고 지군의 아버지 지동춘(56)씨는 패가하다시피 됐다. 논을 팔고 소를 팔았지만 아들은 병신이 됐다. 지군은 울먹이며 『다리를 바로 잡아다오』 그러나 그 돌팔이 의사는 바다를 건너가고 지군의 목멘 소리는 바다가 삼켰다. <글·사진=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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