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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리뷰]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중앙일보

입력

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의 검은색 썬글래스 만큼이나 이제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비가 수리첸에게 던진 말은 외워야 할 대사가 되었고 사람들은 '동사서독'이나 '중경삼림' 혹은 '아비정전'이나 '해피투게더', 그것도 아니면 최근의 '화양연화'중 어느 작품이 더 좋았었는지 즐겨 이야기합니다. 다음 영화에선 또 어떤 음악들을 사용할 것이며 스텝프린팅이나 슬로우모션외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궁금케 하는 감독 왕가위는 영화계의 패션리더가 되었습니다.

58년 상하이 출신으로 5살때 부모를 따라 홍콩으로 오게된 감독의 기억이 녹아있는 영화 '화양연화'는 '중경삼림'과 마찬가지로 단기간에 제작될 예정이었지만 몇몇 설정의 변경과 (예를들면 첸과 차우가 묶었던 호텔방번호는 307호실에서 감독의 차기작이자 홍콩반환 50주년을 의미하는 2046으로 수정되었습니다.) 재촬영, 아시아지역의 경제위기로 인한 투자사의 교체등의 이유로 15개월만에 완성되었습니다.

총 7편의 장편을 제작한 감독의 작품중 5편에 출연하였던 양조위는 '해피투게더'로부터 '화양연화'로 연이어 출연함으로써 감독과의 호흡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었으나, 역시 4편의 작품에 출연하였던 장만옥은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이후로 왕가위와 작업하지 못하였던 관계로 그의 스타일에 다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제작기간이 늘어난 것이 그녀에게 오히려 행운으로 작용하면서 몸에 꽉 끼는 의상에 대한 자연스런 적응과 함께 그녀는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영화는 60년대 홍콩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해 주기 위하여 태국현지서 촬영되었습니다. 류이창의 단편에서 영감받은 감독은 그의 전작들이 그러했듯이 음악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스즈키 세이준의 유메지에 사용되었었던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음악은 제작중 수시로 스텝들에게 들려줌으로써 음악의 리듬에 익숙해지도록 하였으며 라디오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옛노래 '화양적연화'라던가 브라이언 페리의 'IN THE MOOD FOR LOVE'의 극장예고편에서의 사용 (브라이언 페리의 이노래는 촬영이 끝난뒤에도 영화의 영어제목을 결정짓지 못하던 감독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게됩니다.) 60년대 당시 홍콩의 음식점이나 감독의 어머니가 즐겨들었던 넷킹콜의 음악들과 함께 마이클 글라소의 음악역시 감독과의 협의를 거쳐 작곡됩니다. (첼로와 바이올린의 화려한 피치카토는 우메바야시의 음악과 얼마나 멋진 조화를 이룹니까?)

60년대 홍콩서 벌어지는 이웃한 부부간의 상호 맞바람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영화는 왕가위의 스타일과 접목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모두 불같은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영화시작과 함께 보여지는 자막을 통하여 영화의 결말을 친절하게 이야기 해 줍니다. 즉 그것은 차우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하여 수리첸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사람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은 모두 거짓된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서로의 배우자들이 그렇고 수리첸의 사장이 그러하며 아핑역시 그리 건전한 사랑을 하고있진 않으며 영화초반에는 유부녀 수리첸을 유혹코자 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거짓된 사랑을 하는 시대에 자신만의 사랑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두사람은 "그들과 같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지만 결국 그들과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이들의 사랑은 모두 거짓된 것이었거나 혹은 모두 진실된 것입니다. 차우의 부인이 욕실에서 사랑의 고통으로 울듯이 차우를 보낸 뒤 수리첸역시 눈물을 보여줍니다. 두쌍의 어긋난 사랑은 서로 댓구를 이루며 동일반복성을 보여줍니다. (영화가 음악과 함께 반복된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호사장의 미스 유에 대한 사랑도 일회성이 아닌 진지한 관계였음이 삭제씬에서 보여지며 아핑역시 한 때 아름다운 사랑을 하였으며 또한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어떤면에서 아핑이야말로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찾는다는 점에서 과거의 홍콩에 속해있지 않으며 가장 현재의 홍콩과 유사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단 결혼을 통하여 자신의 사랑을 일정단계까진 성취하였음을 들려줍니다. 나머지 과거의 홍콩에 속해있던 등장인물들의 사랑의 성취여부는 홍콩이라는 장소가 겪게되는 변화와 함께 의문시 됩니다. 수리첸의 몸에 붙는,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던 의상들과 함께 당시의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들의 스스로 억압하는 사랑방식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잊혀지고 또 변화됩니다.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관계하고 있음을 눈치챈 차우와 수리첸의 관계를 최초에 유지시킨 것은 서로의 배우자 역할을 연기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함께 그려지고 있습니다. 잦은 출장을 핑계로 외도하는 남편없는 집에서 수리첸은 혼자서 국수를 사다먹습니다. 아내의 외도를 눈치챈 차우 역시 홀로 음식을 먹습니다.

그들의 홀로 음식먹는 횟수는 계속 늘어만 가지만 그것은 포만감을 느끼며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닌 외로움을 더욱 키워주는 식사입니다. 두사람은 함께 만나 식사를 합니다만, 그들이 먹는 음식은 상대방 배우자의 취향이지 자신의 음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두사람은 결국 함께 요리를 하며 자신의 음식을 함께 즐기며 먹습니다. (호텔방에서 함께 요리하는 장면은 삭제되었으나 DVD에서 볼수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억의 문제와 장소에 따른 교차되는 만남을 작품속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준 감독은 '화양연화'에서도 같은 문제들을 다루지만 이 영화가 '아비정전'의 직접적인 속편임을 부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영화의 연관성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만옥의 극중이름의 동일성외에도 편집으로 등장치 못한 차우의 새부인의 이름인 루루는 아비의 새로운 애인이름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사랑으로부터 떠나가선 마지막의 슬픈 장면을 연출하였던 아비의 모습에서 어린 스님이 내려다 보는 가운데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차우의 모습이 연상되며 수리첸은 또다시 사랑을 얻지 못함을 반복합니다. 아비정전과 화양연화속의 수리첸이 그러하듯, 자신이 살아가는 동시간대에 10년뒤의 자신이 함께 존재한다고 상상해 보는 것은 묘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러니까 '화양연화'는 감독이 이야기하듯이 '아비정전'이후 10년 뒤 성숙된 기혼자버전의 영화입니다.

62년의 홍콩과 63년의 싱가폴 그리고 또다시 66년의 홍콩과 그 이후의 캄보디아, 그리고 삭제되었지만 72년의 홍콩을 화양연화 DVD에서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되돌아오는 홍콩이지만 그 곳은 과거와는 다른 시간과 장소이며 사람과 사랑 역시 변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화려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의미하는 화양연화의 기간개념마저도 본인의 기억이 변해가면서 변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두사람은 끊임없이 조우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원하여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차우가 싱가폴로 간 후부터 소망하더라도 서로 만나지 못합니다. 싱가폴로 차우를 찾아간 수리첸은 그의 동료 아핑만을 만날 뿐, 차우를 만나지 않습니다. 싱가폴의 그의 집에 찾아간 그녀는 회사에 있는 차우에게 전화를 걸지만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삭제된 장면중 앙코르와트에서 다시금 만난 차우가 수리첸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혹시 일전에 전화한 적 있었습니까?"라는 차우의 질문에 수리첸은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라는 대답으로 자신의 감정이 정리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하여 두사람의 사랑을 60년대 초 홍콩의 당시상황과 병행시키면서 60년대 중반이후의 홍콩이 이전의 홍콩과 단절의 변화를 겪듯이 그들의 사랑 역시 다시금 시작될 수 없음을 그리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을 통하여 감독은 그들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60년대 홍콩에 대한 향수를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차우가 앙코르와트에서 작게 속삭이던 비밀이야기는 그 어떤 절규보다 크게 들립니다. 차우에겐 취생몽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크라테리언서 금번에 발매된 화양연화DVD는 감독이 영화를 통하여 전달코자 했던 내용들을 고스란히 재현하였습니다. DVD라는 매체가 이정도로까지 영화를 담을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감독과 아비정전서부터 호흡을 같이해온 크리스토퍼 도일과 후샤오시엔의 작품서 주로 참여해온 리핑빈의 카메라가 담은 윌리엄창의 화려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들은 조금의 색깔번짐도 없이 9.0Mbps이상의 비트레이트의 필름라이크한 질감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지속적 반복으로 인하여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는 우메바야시의 음악은 오히려 더욱 듣고싶은 음악들이 되며 448Kbps비트레이트의 잔잔한 드럼소리와 함께 울려대는 마이클 글라소의 음악과 함께 앙코르와트장면은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외에도 종종 보여지는 비내리는 장면이나 넷킹콜의 음악들은 현장감과 공간감을 제대로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오버레핑되는 붉은색의 독특한 메뉴화면 구성역시 신경써서 만들었음을 엿볼 수 있으며 군더더기없는 서플들은 영화 화양연화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제대로 볼 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4개의 삭제된 씬중 3개의 장면은 감독의 코맨터리와 함께 담겨져 있으며 애초 3시간분량의 러프컷을 98분으로 줄이면서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나 조연들의 캐릭터들을 삭제씬들을 통하여 좀 더 알수있게 됩니다. 제작다큐에 담겨있는 감독과 주연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하여 영화의 시작과 제작과정을 들을 수 있으며 (호텔방에서 수리첸과 차우가 트위스트춤을 추는 재미있는 장면도 담겨져 있으며 제5회 부산영화제에 참가한 그들의 모습도 잠시 엿볼 수 있습니다.) 영화학자인 지나 마르체티의 에세이를 통하여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당시배경을, 조안나 리의 에세이를 통하여 당시의 음악과 영화와의 상관관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차이나타운의 한 극장서 발견된 수백편의 옛홍콩영화속의 여배우들의 모습으로 재편집된 왕가위의 단편 화양적연화는 새삼스럽게 필름보관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영화제작에 영감을 준 류이창의 단편소설 Intersection역시 48페이지분량의 소책자로 포함되어 있어 영화의 이해를 돕는데 일조를 하고있습니다.

■ DVD구성 - 출시사: 크라테리언 콜렉션 - 러닝타임: 98분 - 화 면 비: 1.66:1 (아나몰픽) - 지역코드: ALL - 사 운 드: DD5.0 - 자 막: 영어지원 - 디스크수: 2장 - 서 플: 4개의 삭제씬 (감독 코맨터리포함), 화양연화 음악에 관한 에세이, 단편영화 화양적연화수록, 제작다큐멘터리, 2개의 왕가위감독 인터뷰, 양조위/장만옥의 토론토 국제영화제 질의답변 동영상, 영화배경에 관한 에세이, 극장/TV예고편, 제작스텝 및 출연진소개

조성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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