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합리화와 경영 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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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 상공부 장관은 개방 체제하에서의 상공시책의 중점적인 지도방침을 산업합리화에 두고 산업기술의 향상, 제품가격의 국제평준화, 자본과 경영의 분리, 중소기업의 전문화 및 계열화 등을 꾀하는 동시에 산업행정의 근대화를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한다.
「네거티브·시스팀」의 실시를 계기로 하여 국내기업은 종래와 같이 관세장벽과 보호정책의 그늘 밑에서 국제경쟁의 물결을 이겨낼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당국은 산업합리화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시책의 전환을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같다.
산업 합리화의 시책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시책의 구상은 경제현상의 역사적인 계기성과 인과관계를 무시한 과정에서 이루어 졌으며 현실적인 기업의 경영여건을 고려치 않은 결과였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네거티브·시스팀」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무역자유화를 목적으로 하여 실시된 것이 아니고 당면한 외환보유고의 증대, 통화 팽창 등을 수습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안출되었다. 솔직히 말하여 「네거티브·시스팀」이 우리 나라 경제발전의 현 단계에서 실시돼야 할 경제적 인과관계를 명확히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국민경제의 각 부문은 서로 유기적인 관련 위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부문의 애로 타개만을 정책목표로 삼을 경우에는 여지 부문에 그 주름살이 파급되게 마련이다. 통화 환수를 위한 수입자유화 정책이 국내 산업의 육성과 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폐단을 가져온다면 이는 정책의 유기적인 관련을 홀시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개방체제하에서 산업합리화를 촉진한다고 하지만, 국내기업의 경영여건은 도저히 여기에 발맞추어 나갈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깊이 유의되어야 한다. 자본·기술·경영규모·품질·가격의 어느 면에서 보나 우리 나라 기업은 아직도 국제시장에서 선진국의 제품과 그대로 맞서 경쟁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가령, 기업의 자본구조에 있어서 타인자본의 비율이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은행금리만 하더라도 보험료를 합하면 연 3할에 달한다. 그러나 국제금리 수준은 5%내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본과 경영의 분리문제만 하더라도 전문경영자의 경영형태가 일반화되어있는 선진국과 가족회사 내지는 봉쇄적 주식회사와 틀을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국내기업을 비교할 때 재원 조달면에서 서로 경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산합리화는 외국과 경쟁할 수 있는 경영여건이 충분히 성숙되었을 때 비로소 그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산업합리화에 있어 그 실시의 시기나 단계적 추진에 관하여 당국은 좀더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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