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직거래 통한 농가 혁신 바람 판로 안정 … 소비자도 15% 넘게 이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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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호 01면

지난 18일 오전 9시 충북 오창의 유기농산물 판매업체 ‘흙살림’의 유통센터 작업장. 빈 과일박스가 쉴 새 없이 컨베이어벨트 위를 돌고 있었다. 작업자의 손을 거치자 박스에는 곶감·토마토·블루베리·사과·참외 등 다섯 종류의 과일이 한데 가지런히 담겼다. 곶감과 토마토는 상주, 블루베리는 안성, 사과는 무주, 참외는 성주에서 수확돼 하루 전 이곳으로 배송된 농산물이다. 작업 중이던 함선녀 대리는 “이 과일들은 전국에서 여러 농가가 친환경으로 생산한 올스타들”이라고 자랑했다. 이 박스에 들어 있는 농산물들이 중간상을 거치지 않고 주문한 소비자에게 곧바로 배송되는 것이다. 유기농 방울토마토를 납품하는 정세교(48·충북 청주)씨는 “예전에는 소량 단일품목으로 시장과 직접 거래하느라 시장 상황에 가격이 많이 휘둘리고 납품도 일정치 않았다”며 “이제는 다른 농산물과 함께 꾸러미를 만들어 안정적으로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니 소득이 많이 늘었다”고 답했다.

영세농들이 제각각 해오던 농산물 재배와 마케팅이 이제 공동재배, 공동출하하는 협업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꾸러미 사업이다. 공급자가 여러 품종의 제철 농산물을 한데 묶어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주 1회 2만5000원 정도를 지불하면 중간 공급자가 유정란·두부·누룽지·모둠쌈 등 농산물을 생산자로부터 받아 꾸러미로 만들어 가정으로 배송해준다. ‘흙살림’에 따르면 소비자가 신선한 한 꾸러미 분량의 채소를 마트 등에서 구입하려면 2만8000~3만원은 든다. 소비자가 15% 이상 이득을 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게 가능한 것은 기존 ‘생산자-수집상-공판장-도매상-소매점-소비자’로 이어지는 5~6단계 유통 과정을 ‘생산자-중간 공급자-소비자’ 3단계로 줄였기 때문이다. 생산자도 이득이다. 재배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납품할 수 있고 손에 떨어지는 마진도 더 크다. 2010년부터 꾸러미 사업을 하고 있는 ‘흙살림’의 김준배 기획팀장은 “꾸러미 사업에 참가한 농가들은 중·소농들이기 때문에 판로 확보가 어렵고, 시장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분들”이라며 “꾸러미라는 하나의 상품 덕택에 판로도 소득도 안정된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200여 농가가 꾸러미 사업에 참여 중이며, 1000여 명의 소비자가 주 1회 꾸러미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협업시스템은 최근 급증하는 귀농·귀촌인들의 현지 정착에도 필수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충북 충주시 신니면에 사는 편용길(70)씨는 1만㎡(약 3000평) 밭에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정년 퇴임 후 귀촌한 그는 2008년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했다. 편씨는 “소일거리 정도로 시작했지만 막상 해보니 생소한 농사일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편씨가 생각한 게 비슷한 귀농인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이었다. 2011년 1월 충주지역 블루베리 농가들과 ‘친환경블루베리연구회’를 만들었다. 현재 30여 농가가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블루베리 농사에 대한 고민과 경험을 나눈다. 회원 중 80%가 귀농인들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터놓고 얘기하다 보면 배우는 점이 많다. 농사에 자신감이 붙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 귀농귀촌종합센터 이재룡 기술위원은 “막연히 전원생활만 꿈꾸며 준비 없이 농촌으로 가면 실패 확률이 크다”며 “귀농인협의회 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영농기술과 생활과 관련한 도움을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농산물 유통구조를 단순화시키려는 박근혜정부의 정책과도 맥을 같이한다. 현행 6단계로 돼 있는 농축산물 유통구조를 생산자단체·소매점의 3단계로 압축시켜 중간상 마진을 최소화하려는 계획이다.

생산자들끼리 뭉치는 공동농업은 대량 납품을 통한 직거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중간 유통 과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최병욱 박사는 “공동농업은 균일한 품질의 생산품이 나올 수 있도록 교육을 한 뒤 각자 재배한 물건을 공동으로 선별·출하하는 형태가 이상적”이라며 “규모의 경제를 구현해 안정적으로 납품을 늘릴 수 있는 이런 방식을 점차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계기사 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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