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우리 핵을 민족 공동자산으로"…황당주장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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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포를 실은 북한 열차가 18일 평양의 한 역에 정차해 있다. 위장막을 덮은 전투 장비가 열차에 실려 있어 장거리 이동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AP=뉴시스]

북한 국방위원회가 18일 남북 대화 문제를 거론하며 황당한 요구를 쏟아냈다. 국방위 정책국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청와대 안주인은 우리의 핵을 민족 공동의 자산으로 떠받들고 있으면 앞길이 창창하지만 미국의 핵우산을 쓰고 있으면 망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안주인’은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을 폄훼하기 위해 쓰는 표현이다.

 국방위는 이어 정부의 대화 제의와 관련해 “지금까지 우리를 반대해 벌여 온 모든 도발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전면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국방위는 우리 정부에 대해 “다시는 공화국을 위협하거나 공갈하는 핵전쟁 연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것을 세계 앞에 정식으로 담보(보장)하라”는 요구도 했다.

 정부 당국은 국방위의 이런 주장이 기존의 대남 입장 표명과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방위 성명 몇 시간 전 나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나 16일 외무성 성명은 특별한 조건 등을 제시하지 않고 대남·대미 비난에만 치중했다. 하지만 국방위는 과도한 전제조건을 제시하긴 했지만 “진실로 대화와 협상을 바란다면 이런 실천적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탈북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핵실험(2월 12일) 이후 두 달여를 이어 온 대남 공세가 아이템 고갈로 실속이 없어지는 느낌”이라고 진단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까지 나서 대남 비난·위협 공세를 가하다 전면에서 빠져 버리자 각 기관이 관성적으로 비난 입장을 내놓는 형국이란 얘기다. 다소 허황된 주장이긴 하나 행간에 대화 메시지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 대화담론을 선점당한 북한이 일단 비난 논조로 방어하는 상황”이라며 “대화를 앞둔 기싸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진짜로 대화할 마음이 없다면 장황하게 전제조건을 들고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은 북한이 군창건기념일인 이달 25일까지는 군사적 긴장을 이어 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군 인력의 농촌 투입이 필요한 5월부터는 대화모드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방위 성명도 이런 국면을 겨냥한 사전포석이란 풀이다.

 국방위는 북한 헌법상 ‘국가 주권의 최고 군사 지도기관’이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국방위원장 직책을 그대로 두고 제1위원장에 앉았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국방위 성명 전문을 발표하기 15분 전 짤막한 예고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정부 당국자는 “성명에 무게를 싣고 관심을 끌려는 언론플레이”라고 분석했다.

 통일부는 “북한이 남북 긴장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며 대화 전제조건을 제시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통일부 당국자는 “노동당 외곽기구인 조평통이나 외무성과 달리 국방위는 행정기구란 점에서 견해를 밝힌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북한은 이날도 개성공단 내 123개 진출기업에 체류 중인 남측 관계자 197명을 위한 의약품과 식자재를 전달하려던 기업협회 인사들의 방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핵약 대북 지원을 위한 유진벨재단 관계자 8명의 방북은 허용했다. 스티브 린튼(한국명 인세반) 회장 등 대표단은 2~3주간 북한에 체류하면서 재단 측이 지난달 22일 북한에 보낸 6억7800만원어치의 결핵약 분배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 국적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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