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발 같은 버섯구름 … 80㎞까지 '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17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웨스트 비료 공장에서 강력한 폭발로 버섯 모양의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인근 도로에서 포착됐다. [웨스트 AP=뉴시스]

보스턴마라톤 테러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미국에서 이번엔 비료공장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17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중북부 웨이코 인근의 웨스트에 위치한 비료공장 웨스트 케미컬앤드퍼틸라이저에서 대형 폭발로 5명에서 15명이 숨지고 최소 160명이 부상했다. 15일 보스턴에서 압력솥 폭탄 테러로 179명의 사상자가 나고 16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로저 위커(공화) 상원의원 앞으로 독극물 편지가 배달된 데 이어 사흘째 연이은 충격이다. 비료공장 폭발사고와 테러의 연루 가능성에 관계 없이 안전에 대한 공포가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쯤 비료공장 내부에서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앞서 7시쯤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구조대가 출동해 진압하던 중이었다. 현장에 출동해 있던 토미 무스카 웨스트 시장은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큰 버섯구름이 일었다”고 말했다. 사고 지점에서 80㎞ 떨어진 곳까지 들릴 만큼 강력한 폭발음이었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지진 규모 2.1 수준의 진동이 관측됐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학교와 요양원 등 인근 건물 50~70채가 파손됐고 이 가운데 10~15채는 형체 없이 완파됐다. 목격자들은 “창문이 날아가고 도로가 주저앉았다”며 “전쟁터나 다름 없다”고 했다.

 웨이코 경찰 당국은 18일 오전 브리핑에서 “현재까지 5~15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160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추가 폭발 우려 속에 수색작업이 계속되고 있어 사상자 수는 불어날 전망이다. 사망자 중엔 화재를 진압하러 출동한 소방관 3명이 포함돼 있다. 현지 힐크레스트 병원에만 100여 명이 치료받고 있고 이 중 38명은 중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다른 병원 두 곳에도 상당수의 환자가 후송돼 치료받고 있다.

 폭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현지 신문인 댈러스 모닝뉴스는 “처음에는 작은 화재였는데 물을 뿌리면서 오클라호마시티 폭탄처럼 터졌다”는 인근 호텔 직원의 증언을 인용했다. 질소 비료 성분인 무수 암모니아(anhydrous ammonia)는 물과 결합하지 않는 성질을 지녔다. 텍사스주 공공안전국의 D L 윌슨 대변인도 이번 사건의 현장이 “마치 무라 빌딩 참사 때와 같다”고 말했다. 앨프리드 무라 빌딩은 1995년 4월 19일 티머시 맥베이 등 2명이 폭탄트럭으로 테러를 벌인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이름이다. 168명이 사망하고 600명 이상이 다쳤던 당시 테러 때 폭탄 재료로 질소비료가 쓰였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고 공장은 오클라호마시티 테러를 초래했던 다윗파 인질사건 현장인 웨이코에서 불과 30㎞ 정도 떨어져 있다. 93년 4월 19일 광신적인 종교집단인 다윗파에 대한 경찰 진압 과정에서 어린이 21명 등 모두 80명이 숨졌다.

  사고가 난 웨스트 케미컬앤드퍼틸라이저는 텍사스 곡물저장회사라고도 불리며 57년 곡물 저장사업으로 출발했다. 2006년 텍사스 환경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이 공장이 심한 암모니아 냄새로 고발돼 당국 조사를 받았고, 기준치 미달로 벌금을 부과당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현재 공장 내부에는 5만4000파운드(약 24.6t)가량의 무수 암모니아를 비롯한 각종 화학물질이 적재돼 있다. 무수 암모니아에 인체가 노출되면 호흡곤란·물집 등을 유발하고 장시간 노출 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당국은 인근 주민 2700여 명을 대피시키고 학교엔 휴교령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2001년 9·11테러 직후 프랑스 툴루즈의 화학비료 공장 폭발 사고를 연상시킨다. 당시 질산 암모늄 300t이 폭발해 31명이 숨졌다. 테러 여부를 수사했지만 사고 원인은 취급부주의로 확인됐다.

 잇따른 테러 및 사고 소식에 시민들은 불안해하면서도 냉정한 대처를 다짐하고 있다.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는 “사고를 당한 웨스트 주민들과 참상의 목격자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태 보고를 받았으며 연방 긴급사태관리청(FEMA)을 통해 수시로 모니터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혜란·전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