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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누군가는 너를 바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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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강일구]

경찰용 흰색 점퍼를 입은 사나이가 팔을 휘저으며 정신 없이 바다로 달려 들어간다. 앞서 물에 뛰어든 남자를 붙잡으려다 몸의 중심을 잃고 엎어졌다 다시 벌떡 일어난다. 남자는 잡힐 듯 말 듯 더 깊은 곳으로 몸을 피한다. 점퍼의 흰 빛이 점차 작아지더니 급기야 화면에서 사라진다. 밤바다는 다시 검게 변하고 차창에 비친 순찰차 내비게이션 영상만 덩그러니 남는다. 어제 시신 없는 영결식이 거행된 고 정옥성(46) 경감의 마지막 모습이다. 순찰차 블랙박스에 찍힌 동영상이다. 많은 국민이 화면을 보며 울었다.

 지난 3월 1일 밤 10시34분쯤 정 경감은 중학생 딸(16)과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딸이 ‘아바마마’로 이름을 입력해 놓은 아빠에게 “나 새우 먹고 싶어. 새우 먹자”고 하자 정 경감은 “너 혼자 드셔요. 나는 아냐”라고 답했다. 딸은 다시 “할머니께 말할 거야. 새우 먹자고. 아 찡찡찡…”이라며 애교를 부렸다. 오후 11시6분쯤 112 상황실로부터 ‘자살 의심자 있으니 출동 바람’이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장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선착장. 함께 순찰차를 타고 출동했던 양흥식 경사는 “옥성이 형이 자살 시도자(김모씨·45세)를 발견하자마자 권총까지 찬 차림으로 곧장 바다로 달려 들어갔다”고 말했다. 춥고 어둡고 바람까지 거세게 부는 날씨였다. 강화경찰서 김영락 경사에 따르면 외포리 앞바다 물살은 ‘바위를 굴리고 다닐 만큼’ 세차다.

 헬기·경비함·공기부양정·어선 등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정 경감의 흔적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자살을 시도했던 김씨의 시신은 3일 뒤 현장에서 북쪽으로 30㎞나 떨어진 강화도 바닷가에서 발견됐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 구하려던 사람은 유해나마 찾았지만 정작 정 경감이 어디에서 헤매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종 49일째인 어제 강화경찰서에서 치러진 영결식에서 한 경찰관이 고별사를 보냈다. “네가 그리도 예뻐하던 딸은 아빠 오시면 같이 새우를 먹겠다고 창밖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데 너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구나. 누군가는 너를 보고 바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너는 진정 우리 대한민국 13만 경찰의 대표였다.”

 살아 있는 이들이 숭고한 희생이다, 경찰의 모범이다, 아무리 애도한들 당사자나 유족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겠는가. 1계급 특진과 훈장 추서가 흔쾌하겠는가. 몇몇 뜻있는 기업이 유가족에게 위로금과 학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래도 정 경감이 아무 일 없었던 듯 웃으며 나타나 딸에게 새우 요리를 사주는 게 제일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세상이 썩고 데데하다며 젠체하던 이들, 나를 포함해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한다. ‘딸 바보’ 정옥성 경감의 명복을 삼가 빈다.

글=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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