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사랑' 형부·처제 사실혼도 법적 보호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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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에 살며 건물 경비 일을 하는 A씨(70)는 1962년 결혼해 3남1녀를 뒀다. 아내에겐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 B씨(58·여)가 있었다.

A씨에겐 처제였다. A씨와 B씨는 사랑에 빠져 75년 아들까지 낳았다. 아내와는 80년 이혼했다. 이혼 후 B씨와 살다가 2년 뒤 헤어졌다.

15년이 흐른 97년부터 다시 동거에 들어갔다. A씨는 2010년 갖고 있던 땅을 판 대금 2억여원을 B씨에게 맡겼다.

이후 A씨의 술주정을 이유로 부부싸움을 벌이던 B씨가 결별을 통보하자 격분한 A씨는 법원에 재산분할소송을 냈다.

B씨는 법정에서 “민법상 결혼할 수 없는 형부와 처제 사이였기 때문에 일반적 사실혼과는 달리 재산분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A씨에게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가정법원 가사2부(부장 이태수)는 “형부와 처제 간 사실혼도 법률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으니 B씨는 A씨에게 1억5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재산분할 비율은 A씨와 B씨가 각각 6대 4로 나눴다. 동거 기간 동안 B씨가 전업주부로 가사를 전담한 반면, A씨의 소득만으로 생활했던 점을 고려했다.

 형부·처제 간 결혼은 현행 민법상 혼인 취소 대상이다.

재판부는 “비록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사실혼이더라도 혼인법 질서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반윤리성, 반공익성이 낮다면 정상적인 결혼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변희찬(법무법인 세종 가족분쟁팀) 변호사는 “취소 대상인 사실혼 관계도 상황에 따라 위자료·재산분할 청구권 등의 법률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2010년 형부와 사실혼 관계였던 처제가 형부 사망 후 낸 유족연금 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판례를 가사소송에 적용한 첫 사례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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