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접대 의혹 핵심 별장주인 … 경찰, 아직도 소환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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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지난달 31일 고위층 성접대 사건이 벌어졌던 현장으로 알려진 강원도 원주시의 윤모씨 별장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당시 ‘뒷북치기 압수수색’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경찰은 공개 수사에 착수한 지 한 달째가 되는 18일까지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경찰이 건설업자 윤모(52)씨의 성접대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지 18일로 한 달째다. 그러나 신병 처리는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핵심 증거물인 성접대 동영상이 있는지 조차 불분명한 상태다. 이른바 ‘성접대’ 사건의 실체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다. 지난 한 달간의 수사 기록을 재구성했다.

 ◆내사 착수=지난달 18일 경찰청 출입기자들의 휴대전화로 긴급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건설브로커 불법행위 의혹 관련 수사기획관 티타임 오전 10시’.

 세간의 풍문에 대해 경찰이 입을 열겠다는 신호였다. 그 풍문은 건설업자 윤모씨가 사회 지도층을 상대로 성접대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고위층 인사가 등장하는 섹스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권력과 성(性)이 연결된 뉴스는 큰 사회적 파장을 예고했다.

 이세민 경찰청 수사기획관이 기자들과 둘러앉았다.

 “언론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습니다.”

 기자들이 웅성댔다. 내사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곳곳에서 질문이 튀어나왔다.

 -성접대 의혹까지도 포함해 내사하는 겁니까.

 “아직까지는 (성접대와 관련해) 실체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사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할 수도 있겠지요.”

 이날 경찰 지휘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달 초 경찰 고위 인사가 청와대에 “윤씨와 관련한 내사 사실이 없다”고 보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 일선 수사 라인이 직접 청와대에 들어가 내사 사실을 따로 보고하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유임이 예상되던 당시 김기용 경찰청장이 전격 교체된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성접대 동영상 확보, 그러나=경찰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경찰청 범죄정보과와 특수수사과를 주축으로 21명 규모의 수사 TF팀이 꾸려졌다. 지난해 말 건설업자 윤씨를 강간·공갈 혐의로 고소했던 여성 사업가 권모(52)씨를 비롯해 성접대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들이 줄줄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윤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의 실명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형병원장 P씨, 전직 고위 공무원 S씨, 현직 고위 공무원 P씨 등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지난달 20일 한 참고인이 경찰 조사관에게 동영상 파일 하나를 내밀었다. 풍문으로 떠돌던 ‘성접대 동영상’이었다. 사회 고위층으로 추정되는 인사가 노래를 부르다가 검은 원피스 차림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모습이 담겼다고 했다. 성접대에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 30대 여성 C씨는 경찰에서 확실하게 진술했다. “동영상 속 인물과 관계를 맺은 적이 있습니다.” 경찰이 동영상을 확보한 다음날, 한 언론은 성접대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인사로 김학의 법무부 차관의 실명을 공개했다. 김 차관은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다”라며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화질이 안 좋아 동영상 속 인물이 누구인지 특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동영상은 노트북 화면을 휴대전화로 다시 촬영한 것이었다. 지난달 22일 국과수 분석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해상도가 낮아 얼굴 대조 작업에서 (김 전 차관과의)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요 참고인들마저 진술을 번복했다.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 맞다”고 했던 C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모르는 일”이라며 말을 뒤집었다.

 그러나 닷새 뒤 경찰은 김 전 차관을 비롯한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이 이 사건과 관련됐다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경찰은 지난달 31일 강원도 원주시 윤씨의 별장을 압수수색하며 반전을 꾀했다. 그러나 수사를 시작한 지 13일 지난 뒤 벌인 압수수색은 “늑장 수사”라는 비난 여론만 부추겼다.

 ◆그 후 한 달=별장 압수수색 이후 경찰은 이렇다 할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윤씨와 김 전 차관 등 핵심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는 시작조차 못했다. 지지부진한 수사 상황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조차 “사건이 실체보다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이번 사건의 수사 지휘 라인은 전격 교체됐다.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은 울산지방경찰청장으로, 이세민 수사기획관은 경찰대 학생지도부장으로 옮겼다. 사실상 문책성 좌천 인사라는 말이 무성했다.

 수사 착수 한 달째를 맞이하는 17일 오전. 이명교 특수수사과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언제쯤 수사가 마무리될까요.

 “신속하고 철저하게 하겠습니다.”

 지난 한 달간 수없이 오갔던 문답이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정강현 기자

오리무중 성접대 의혹 수사

▶2012년 11월 = 여성 사업가 권모씨, 건설업자 윤모씨를 서울 서초경찰서에 강간·공갈 혐의로 고소. 경찰, 성접대 첩보 최초 입수 가능성.

▶2013년 3월 초 = 경찰 지휘부와 일선 라인, 청와대 에 윤씨 내사 사실 엇갈린 보고.

▶18일 = 경찰청 특수수사과, 건설업자 윤모씨의 성접대 동영상 내사 착수.

▶20일 = 경찰, 2분30초짜리 김학의 전 법무차관 추정 인물 찍힌 동영상 확보. 30대 여성 C씨로부터 “김학의 전 차관을 직접 상대했다”는 진술 확보.

▶21일 = 경찰, 내사에서 수사로 전환. 김 전 차관이 사표 제출, 청와대 수리.

▶22일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동영상 확인 결과 ‘동영상 속의 인물이 김 전 차관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 표명.

▶27일 = 경찰, 김 전 차관 등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

▶ 28일 = 김 전 차관 등 일부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 기각.

▶31일 = 경찰, 윤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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