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128만원 인하 … 현대·기아차에 맞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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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국내 자동차 시장이 가격 인하 경쟁으로 달궈지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파격적으로 차량 가격을 낮추면서다. 소비자들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차값 인하 경쟁을 반기면서도 그 배경을 궁금해한다.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수입차 업체들의 약진과 국내 자동차 시장 정체 현상 등이 겹치면서 가격 인하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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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GM은 17일 준중형 쉐보레 크루즈의 연식 변경 모델인 ‘2014 G2 크루즈’를 출시하면서 기존 최저 등급인 LT 아래에 LS플러스 등급을 새롭게 추가했다. 가격은 1683만원으로 1806만원인 LT보다 128만원이나 낮다. 하지만 상품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자동변속기를 최신 G2변속기로 교체했고, LS플러스에도 사이드와 커튼 에어백까지 기본으로 장착했다. 예전 같으면 가격 인상 요인들이다. 주력 등급인 LT플러스 가격도 1917만원(해치백)과 1932만원(세단)에서 각각 1888만원과 1904만원으로 인하됐다.

 가격 인하 움직임은 현대자동차가 2013년형 그랜저 가격을 동결했던 지난해 말부터 조금씩 감지되다가 올 들어 봇물이 터졌다. 현대차가 1월 쏘나타·제네시스·제네시스 쿠페·싼타페·베라크루즈 가격을 최대 100만원까지 낮춘 데 이어 기아자동차도 K9을 290만원 할인해줬다. 한국GM도 스파크·크루즈·말리부·캡티바·알페온을 5만~50만원 인하했다. 3월에도 현대차가 i40·i30·벨로스터의 연식 변경 모델들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가격을 25만~155만원까지 낮췄다. 르노삼성과 쌍용차도 할부금리를 낮추거나 특별 이벤트 형식을 빌려 가격을 낮춰주고 있다.

 국산차 가격을 끌어내린 가장 큰 요인은 수입차다. 지난해 수입차 점유율이 처음으로 10%를 돌파하면서 국산차 업체가 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수입차 점유율 상승 배경에도 가격 인하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시장에는 2000만~3000만원대에 구입 가능한 수입차들이 즐비하다. 최저가 기준으로 닛산 큐브는 2260만원, 2013년형 혼다 시빅과 도요타 코롤라는 2590만원, 푸조208은 2890만원, 피아트500은 2690만원이다. 이달 말 시판 예정인 폴크스바겐 폴로는 2490만원에 가격이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 등 일본 중형차들도 그랜저 가격대인 3000만원대 초반이면 살 수 있다. 국산차와 충분히 경쟁 가능한 가격대가 된 것이다.

 향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단 수입차들의 가격 인하 공세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도 푸조가 중형차 508의 가격을 최고 360만원 낮췄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입차 ‘가격거품’ 유무 조사, FTA로 인한 단계적 관세 인하 등 추가적인 수입차 가격 인하 요인들도 있다.

 ‘파이’가 커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우리나라의 신규 차량 등록대수는 2010년 이후 3년 연속으로 150만 대 선에 정체돼 있다. 지난해의 경우 자동차 개별소비세까지 인하해줬지만 등록대수는 오히려 전년보다 3.4% 감소했다. 시장은 커지지 않는 반면, 경쟁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 국산차, 수입차를 막론하고 당분간 가격 인하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가뜩이나 수익성이 낮아진 자동차 업계에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윤대성 수입차협회 전무는 “대중교통의 발달과 청년층의 소비 여력 감소 등으로 자동차 시장이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저렴한 엔트리카(생애 첫 구매차량)를 많이 공급하는 등의 전략으로 자동차 구매자 절대수를 늘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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