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실각」과 중공 문화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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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의 「문화대혁명」은 당 기관지 「홍기」지가 1일 수정주의로 비판되어온 국가주석 유소기의 실각을 발표함으로써 1년간의 격동과 혼미상으로부터 수습의 첫 단계를 예상케 하는 새 단계에 들어섰다.
그 동안 유의 반모공작조 파견 실패에 뒤이은 홍위대 등장, 열렬한 모택동 추앙, 유혈을 수반한 탈권 투쟁, 고참당원들의 대량숙청 등으로 점철된 문화혁명은 7월 1일 창당 46주년 기념일에 즈음하여 당 이론 기관지 「홍기」는 그 사설을 통해 반수정주의 투쟁의 궁극적 대상이던 유소기의 실각을 처음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홍기」지는 유를 여전히 『자본주의노선을 걷는 당고위 실권파』라고만 지칭한 사실은 국가주석으로서의 유소기의 실각을 공식화하기엔 아직 이른 것임을 충분히 시사하고 있다.
「홍기」지의 『자본주의노선을 걷는 한줌의 당내실권파들이 제거됐다』는 말은 수정주의 파의 우두머리로 비판되고있는 유뿐만 아니라 당 총서기 등소평·전당선전부장 도주 등 유계열 당간부의 실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당중앙의 일부 반모파에 대한 물리적인 거세를 의미하는 것이지, 당 행정 산업 등 각 분야에 뿌리깊은 세력을 뻗쳐있는 이른바 반모 수정주의파에 대한 전면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말로는 해석될 수 없다.
홍위대 등장으로 반모파가 탈권 되어 괴멸상태에 몰렸지만 한때 주류 파로 대두했던 도주 부수상의 지반인 당중앙중남국, 유·등 파로 알려진 이정천 서기의 서남국, 유란도 서기의 서북국 지구에선 유변사태가 끊이지 않은 상태는 반모파의 저항이 쇠퇴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중공의 국제적 위신을 한층 높인 수폭의 실험지도 신강성의 왕은무의 장악 하에 있으며 따라서 이 이유만으로도 모는 왕과의 타협이 불가피했다는 소위 「홍콩」정보 등도 이를 측면에서 뒷받침하는 것으로 설명 될 수 있다.
이렇게 보아오면 유소기 등의 수정주의 세력이 결코 『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한줌의 실권파』가 아니며 또한 친모파 말대로 『문화혁명을 백년이라도 계속해야 할지도 모를』무시 못할 뿌리깊은 세력이란 결론이 올 수 있다.
그러면 비록 지명은 되지 않았을 지라도 당 대회나 인민대표자대회를 거치지 않은 국가주석의 실각이 당 기관지를 통해 발표된 이유는 무엇일까.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코시긴」소수상의 미국 방문과 때를 같이해서 폭발된 중공의 수폭 실험과 같이, 창당 46주년에 즈음하여 모택동 주류파의 우세를 과시하려는 저의임이 분명하다는 일부 관측을 믿어도 좋을 것 같다. <이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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