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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안정 찾는 인니의 몸부림-「자카르타」=임상재 특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수카르노」가 물러간 「인도네시아」는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 재건을 향해 몸부림치고 있다.
북평의 지령에 의해 정부를 송두리째 전복하려던 붉은 흉계를 타도하고 들어선 「수하르토」 장군의 정부가 이겨내야 할 이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밥톱과 사탕발림>
한때 민족의 태양으로 떠받들던 「수카르노」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국민들의 숭앙심, 군과 정치, 학생들의 정치적 역할, 구 질서와 신 질서문제, 외채문제, 부패와 밀수문제, 화교문제 등 숨막히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오늘의 「인도네시아」를 바라보는 외인들의 눈에는 할퀴는 발톱과 속이는 사탕발림이 있다는 것이 「자카르타」식자들의 말이다.

<비동맹의 「수」노선>
1945년 3세기 반에 걸친 화란의 지배를 벗어나겠다고 독립을 선포한 「수카르노」 전 대통령은 6천여개의 유인도와 7천여의 무인도로 구성된 「인도네시아」를 다스릴 과학적 행정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렇게 넓은 지역과 수많은 섬을 이끌어 가기 위하여 「수카르노」의 「카리즈마」적 정치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비동맹 「그룹」의 선두에 나서서 국제적 「제스처」에 능했던 「수카르노」는 국내적으로는 「나사콤」체제가 균형을 잡고 있는 동안 「인도네시아」국민의 「위대한 지도자」로서 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좌경하기 시작한 그의 「중립」이 급기야는 북평·평양, 「하노이」와 손잡고 구축을 이루게 되고, 9·30사건으로 공산음모가 노골화하자 「수카르노」의 정치생명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물러났지만>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수하르토」와 「나수티온」이 영도하는 군이 정권을 잡았으나 「수카르노」의 정치세력이 완전히 거세되었다고 보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것이 「자카르타」의 정치관측자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이다.
관측통들은 「수카르노」의 정치세력이 거세 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수하르토」 장군의 정치력이 「자바」섬을 근거로 한 「수카르노」세력 위에 온존한다고 까지 말한다. 이러한 관측에 대해 「인도네시아」언론인들도 굳이 반론을 내세우지 않았다.

<수카르노 재기설>
「수카르노」의 재판회부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학생행동전선에 「수하르토」 장군이 정면으로 맞서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사실은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과거에 「수카르노」와 극히 가까웠던 어느 일본 언론인은 9·30 사건이후 재판에 의해 사형언도를 받은 「수반드리오」전 외상, 「운퉁」 중령 등 수많은 전직요인들이 처형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인도네시아」 공산당수 「아이디트」의 사망을 확인할 만한 증거가 제시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들어 「수카르노」가 재기를 노리고 있다는 억측까지 내세우고 있다.

<의문의 보고르 궁>
그런데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자카르타」에 있는 외국기자들 가운데 「수카르노」가 현재까지도 대통령관저인 「메르데카」궁에 머물러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앞서 「수카르노」가 「자카르타」를 떠나 60킬로 떨어진 「보고르」궁에 옮겼다고 발표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 출입하는 「안타라」 통신기자들도 「수카르노」가 「메르데카」궁에 있으며 주말에만 「보고르」궁에 간다고 은밀히 말해주었다.
「인도네시아」 학생행동전선이 「수카르노」를 재판에 회부하라고 아무리 외치더라도 「수하르토」 장군이 대통령 대리직에 있는 동안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학생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인도네시아」 국민의 상당수가 아직도 「수카르노」를 높이 받들고 있다는 데에 이 나라의 정치적 고민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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