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연료 재처리 美반대 피할 우회로 독자 기술 관심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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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해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도적으로 개발 중인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미국의 강한 반대를 피해 갈 수 있는 ‘우회로’를 열어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되는 핵연료는 100% 우라늄 산화물이다. 우라늄-235가 약 3.5%, 우라늄-238이 나머지 96.5%다. 이 핵연료를 약 3년간 사용하면 플루토늄 0.9%와 기타 초우라늄 원소(우라늄보다 무겁고 방사선을 많이 내며 반감기가 수만 년이나 되는 원소, 넵투늄·아메리슘·퀴륨) 0.1%, 요오드·테크네튬 등 기타 핵분열 생성물 3.4%, 그리고 타지 않은 우라늄 95.6%가 남는다.

 기존 재처리 기술은 질산을 사용해 이 사용후 핵연료를 녹인 뒤, 유기용매(TBP)를 사용해 수용액에 포함된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다시 뽑아낸다. 미국은 이렇게 얻어진 순수한 플루토늄이 핵무기를 만드는 데 전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반대하고 있다.

 이에 비해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 핵연료를 고온(섭씨 500~600도)의 용융염에 넣은 뒤 전기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유용한 핵물질을 분리해 내는 기술이다. ‘습식’으로 불리는 기존 재처리 방식과 비교해 ‘건식’으로 불린다. 이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플루토늄이 순수한 형태가 아니라 다른 초우라늄 원소 등과 섞여 검출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순도가 떨어져 핵무기를 만들 순 없지만, 차세대 원자로로 불리는 소듐냉각고속로(SFR)의 핵연료로는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문제다. 2006년 실험실 규모(연간 0.2t 처리)의 시험시설을 만들어 기술적 가능성을 입증했을 뿐이다. 당초 다음 달까지 대량생산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공학 규모(연간 10t 처리)의 시험시설(‘PRIDE’)을 구축할 예정이었지만, 작업이 늦어져 하반기로 늦춰진 상태다. 실용화는 2025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술이 순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음에도 미국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미국은 파이로프로세싱을 ‘재처리 기술’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 연구진이 ‘재활용 기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과 딴판이다. 한국은 이런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2010년 향후 10년간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미국과 공동 연구하기로 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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