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팔순의 판화 인생 황규백 유화로 새로운 꽃 피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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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백, 정원의 탁자, 2012, 유화, 45.5×33.4㎝. [사진 신세계 센텀시티 신세계갤러리]

벽에 기대 선 우산을 그리며 화가는 그걸 쓰고 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정원의 흰 테이블엔 두 개의 의자, 두 개의 찻잔이 마주하고 있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있었던 듯한 몽환적 풍경, 익숙한 사물이 낯설게 다가오는 초현실적 이미지로 폭넓은 애호가층을 형성해 온 황규백(81)의 판화와 유화다.

 황씨가 고향인 부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부산시 센텀남대로 신세계 센텀시티 신세계갤러리에서 다음달 6일까지다. 작품 50여 점을 내놓았다. 그는 36세에 파리로 가 에콜 드 루브르 및 판화공방인 아틀리에17에서 판화를 배웠고, 1970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딱딱한 동판을 꼼꼼하게 긁어내는 메조틴트 기법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2001년 귀국한 뒤 지난 30여 년간 고수해 온 동판화 작업 외에 유화에 심취, 판화와는 또 다른 자유로운 느낌을 화폭에 담았다.

 황씨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서울 역삼동 작업실로 오전 8시에 출근,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한다. “체력이 다해 판화를 접던 10여 년 전, 그걸로 화가 인생도 끝날 줄 알았다. 사생결단하듯 유화에 매달린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판화의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에 유화가 이리도 재미있는 거구나, 말 안 통하는 뉴욕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서울 생활이 이리도 좋구나 하며 아주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경성(1919~2009)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생전에 “황씨의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잠재해 있는 정감을 끌어낸다. 그는 일상의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 이상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고 평한 바 있다. 051-745-1503.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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