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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규제 없애 기업인들 자유 만끽하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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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글로벌 중견·중소기업은 한국 경제의 미래다. 문제는 ‘어떻게 키우느냐’다. 본지 고문인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 미하엘 푹스 독일 집권 기독민주·기독사회당연합 원내 부대표가 독일의 성공 경험을 한국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지 짚어봤다. 이번 특별 대담은 중견기업 국제 콘퍼런스 하루 뒤인 13일 진행됐다.

▶사공일=한국에도 독일처럼 히든챔피언이 많았으면 한다. 독일이 그토록 많은 히든챔피언을 보유하고 있는 비결을 꼽는다면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요인을 좀 귀띔해줬으면 한다.(독일에서 히든챔피언은 세계시장 점유율 3위권 이내, 매출 40억 달러 이하이면서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중견기업을 말한다.)

 ▶미하엘 푹스=(껄껄 웃으며) 여러 가지가 작용한 결과다. 기업가 정신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우선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 환경이 자유로워야 이게 가능하다. 기업인들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관공서 서류를 꾸미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공=중견기업들이 기술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 규모로 봐서 연구개발(R&D)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 어렵다. 독일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는가.

 ▶푹스=독일엔 유명 연구센터가 많이 있다. 창업자들이 편하게 이들 연구센터나 대학을 찾아가 문제를 털어놓고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기술적인 도움을 받는다.

 ▶사공=한국엔 많은 대기업이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아직 취약하다. 그래서 정부가 적극 나서 중소기업들을 돕는다. 하지만 직접 보조금을 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푹스=맞는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다. 기업인들이 자유를 만끽하도록 해야 한다. 바보 같은 규제들을 근절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영역을 나눠 칸막이를 치는 규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독일에서도 요즘 큰 논란이지만 ‘이런 건 중소기업만 해야 한다’는 식의 온실은 만들지 않으려 한다. 정부가 막아주면 중소기업들의 창의력이 고갈될 위험도 따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쓸 때 더 강해지는 법이다. 물론 강자가 법을 위반하는 불공정행위는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사공=나도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젊은 창업자와 대학·싱크탱크 등이 서로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이 아직 이 부분에 약하다. 독일에선 대기업도 젊은이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는가.

 ▶푹스=독일 대기업들이 청년 창업을 활발하게 돕고 있지는 않다. 대신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업에 도전할 여건이 잘 갖춰져 있다. 내가 보기엔 이게 아주 중요하다. 젊은이가 창업하려고 할 때 대학의 연구 성과나 시설을 곧바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공=화제를 돌려보자. 독일은 오는 9월 총선을 치른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가 주시하는 정치 이벤트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재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유로존 위기 탈출전략 등이 바뀔 수도 있다. 독일 총선의 주요 쟁점이 궁금하다.

 ▶푹스=지금까지 독일이 해온 개혁 조치들이 안착하도록 하는 일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R&D 투자를 어떻게 늘릴지도 관심이다. 금융 시스템도 계속 안정시켜야 한다. 국가부채가 새로 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셰일가스 등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일도 핫이슈다. 메르켈의 재집권을 확신한다.

 ▶사공=요즘 한반도 상황이 심각하다. 북한의 위협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외국인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궁금하다.

 ▶푹스=서울에서 며칠 지냈는데 (전쟁)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모든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듯하다. 독일에 돌아가서도 한국은 매우 안정적이라고 전하려고 한다.

 ▶사공=한국에 투자한 외국인들도 같은 생각인 듯하다. 그런데 요즘 북한 내부에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옛 동독처럼 북한도 갑자기 무너질지 모른다는 느낌도 든다. 독일 경험에 비춰 한국이 갑작스러운 통일을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까.

 ▶푹스=생각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 동독 사람들은 아주 수동적이었다. 공산당과 정부의 지시에 따라 피동적으로 움직였다. 이런 사람들을 시장 경제에 어떻게 적응시킬지 대비해 놔야 한다.

 ▶사공=이제 유럽 위기 상황을 살펴보자. 유럽은 언제쯤 좋아질까.

 ▶푹스=이미 좋아지고 있다. 유럽의 부채 문제는 미국의 재정 문제보다 덜 중요한 이슈가 됐다. 현재 유럽 위기는 해결 가능한 단계로 들어갔다. 남은 문제는 경쟁력 회복 여부다. 그게 안 되면 미래가 없다. 우리는 아시아와 경쟁하고 있지 않는가.

 ▶사공=맞는 말이다. 긴축만으론 충분하지 많다. 경제구조 개혁이 필수적이다. 개혁 없인 경쟁력이 높아질 수 없다.

 (대화가 국가 경쟁력에 이르자 자연스럽게 독일에서 좌파로 통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재임 기간 1998~2005년)가 추진한 ‘어젠다 2010’이 화두가 됐다. 이는 독일의 경제개혁 프로젝트였다.)

 ▶사공=독일 경제가 유로화 덕분에 큰 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독일의 구조개혁이다. 슈뢰더 총리의 ‘어젠다 2010’이 한국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푹스=독일은 통일 이후 정말 어려웠다. ‘유럽의 환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를 극복하고자 슈뢰더 총리가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과도한 사회복지 혜택를 줄였고 노동시장은 유연하게 바꿨다. 세제를 개혁해 기업들의 세 부담은 줄였다. 일정 기간 임금도 거의 오르지 않았다. 그 결과 기업들의 경쟁력이 커졌다. 일자리가 늘었고 세수가 증가하면서 복지도 개선됐다.

정리=강남규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미하엘 푹스= 대학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1976년엔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4년 뒤인 80년엔 임펙스일렉트로닉이란 자동차 부품 업체를 직접 창업해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기업인으로 활동을 하다 2002년 지역구 의원으로 연방 의회에 진출했다. 집권 기독민주당의 2인자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경제 브레인으로 통한다.

◆ 사공일=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료가 아닌 학자 출신으로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대통령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93년 민간 싱크탱크인 세계경제연구원을 설립, 각종 콘퍼런스 개최와 저술 등을 통해 한국 경제와 기업의 발전 방향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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