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매장·갤러리 … 층층이 오가며 우리 그릇 생생 체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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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호 14면

1 지하와 1층 사이를 튼 시원스러운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5m가 넘는 대형 조형물도 볼거리다.

도예 하면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사람이 많다. 두 부류다. TV 사극 속 문갑을 장식한 청자나 백자를 떠올리든지, 아니면 내키는 대로 박박 닦기 부담스러운, 좀 사는 계층의 전유물로 여기든지다. 그래서 대부분 떨어뜨려도 잘 안 깨진다는 대량생산 제품을 쓴다. 이걸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생활 도예 1세대’로 불리는 작가 이윤신(55)씨다. 20년 넘게 우리 그릇 생활화에 주력해 온 그는 “음식 담아 먹고 커피 담아 마시는 용기일 뿐인데 왜 사람들은 우리 그릇을 멀게만 생각할까” 하는 아쉬움을 늘 가졌다. ‘작가’가 아니라 ‘그릇 디자이너’이고 싶은 그에게 그릇은 전시대 위에 조명 비춰 감상하는 작품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상에서 심상하게 쓰는 그릇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도예 전문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이도’

개·보수를 거쳐 최근 새롭게 문을 연 서울 가회동의 갤러리 이도는 그런 이씨의 안타까움에서 탄생한 곳이다. 특색 있는 전시장과 식당이 많은 동네 특성상 “지나가던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들러 만져보고 써보고 구경하면서 우리 그릇에 대한 친근감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에서 새 단장을 하게 됐다. 2010년부터 같은 자리에 있던 건물을 판매공간은 줄이고 전시를 비롯한 문화공간은 늘렸다. 지하 2층, 지상 3층으로 삼청동·가회동·소격동 등 인근 일대에선 꽤 여유 있는 규모다.

6 외부에서 본 갤러리 이도.

특색 있는 곳으로 입소문 날 만하다 싶은 과감한 설계가 먼저 눈에 띈다. 지하 카페의 천장을 터 1층과 시원스럽게 연결한 점이 인상적이다. 음료와 케이크 등을 준비하는 카운터 뒤쪽으로 1층 높이까지 올라오는 기다란 선반을 짜 넣어 이씨의 그릇을 전시했다. 주인 입장에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형 기중기를 동원해 그릇을 바꿔 넣는 수고로움이 있긴 해도 방문객의 호기심을 끄는 덴 일단 합격이다. 전시라는 목적과, 눈길을 사로잡는 인테리어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셈이다. 바로 옆에 5m가 넘는 이재준 작가의 조형물 ‘자연의 수호자’가 버티고 있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실외에나 있음 직한 대형 조형물이 실내에 있다는 데서 발상의 전환이 느껴진다. 이런 설계와 인테리어는 “건물에 들어선 손님들의 동선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지하로 연결할까를 건축가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산물”이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카페에서 사용되는 접시나 머그컵 등 모든 그릇은 이씨가 만든 것이다.

하반기부터 도예·미술사·음악사·요리 통합 강좌
갤러리 이도는 무엇보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야심을 가진 곳이다. 갤러리와 아카데미, 도예 작업장을 한데 모아놓은 이유다. 지하엔 주전자·항아리·대형 그릇 등 고급 기술이 필요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도예 작업장, 2층엔 대형 주방, 3층엔 전시와 하우스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갤러리 등이 마련됐다.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개설될 아카데미 강좌 때문이다. 도예·미술사·음악사·요리 등의 강좌를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 분야를 종횡무진 누비는 다소 독특한 방식이 될 예정이다. 가령 미술사를 배우다 해당 시대에 유행했던 요리를 만들어보고 자신이 완성한 그릇에 담아본다든지, 음악사 수업에 하우스 콘서트가 곁들여지는 식의 ‘통합 교육’이다.

2, 3 4월 30일까지 열리는 ‘살롱 드 이윤신’전. 앤티크 가구와 우리 그릇의 조화가 눈길을 끈다. 4 전시판매장에선 이윤신씨를 비롯해 이능호·임의섭·장진 작가의 그릇을 판다. 5 물레반을 돌리는 아카데미 회원들.

“각각의 과목을 따로 배우는 문화강좌는 다른 데도 많지만 이렇게 다양한 교양을 복합적으로 쌓을 수 있는 곳은 이도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이씨의 자랑이다. 갤러리 이도의 도예 작업장 회원은 170여 명. 이 중엔 배우 공효진과 옥주현, 이하늬 등 스타들도 있다. 모두 부정형과 무규칙이라는 도예 작업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들이다.

갤러리 이도에선 이씨의 신작을 소개하는 ‘살롱 드 이윤신’전이 4월 30일까지 열린다. 작가의 아틀리에와 응접실, 상점을 구현한 유럽풍 컨셉트 또한 독특하다. 유럽 앤티크 가구와 우리 그릇이 어우러지는 맛은 오묘하다고밖에 표현이 안 된다. 이씨의 그릇 수는 아이템당 50개가량으로 한정돼 있다. 잘 팔리는 아이템은 최대 200개까지 생산한다. 스케치와 샘플 작업은 이씨가 하고 수량을 맞추는 공정은 조수들이 맡는다. 물론 조수들이 이씨의 만듦새에 근접할 때까지 지도하는 것도 작가의 몫이다. 하지만 손으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릇 모양이 100% 똑같을 수는 없다. 이 또한 이씨가 강조하는 우리 그릇만의 멋이다.

이씨의 그릇은 미슐랭 3스타 셰프인 프랑스 요리사 장 조지와도 인연을 맺었다. 장 조지는 한국계 아내 때문에 한식에도 관심이 많아 2011년 미국 PBS 방송 다큐프로그램 ‘김치 크로니클’을 진행했었다. 이 프로에서 장 조지는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담기 위해 이씨의 그릇 200여 점을 구입했다. 갤러리 이도에선 ‘김치 크로니클’에 등장했던 이씨의 그릇들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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